아르테미시아 1세(기원전 5세기)는 소아시아, 즉 오늘날 터키에 위치한 고대 지역 카리아의 여왕으로, 아케메네스 제국(페르시아 제국)의 종주권 아래에서 통치했습니다.
전쟁 지휘관들 사이 유일한 여성
카리아의 여왕 아르테미시아 1세에 대해 현재까지 전해지는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그녀의 아버지 리그담니스 1세는 할리카르나소스의 총독(사트라프)이었고, 어머니는 크레타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피신델리스라는 아들을 두었으며, 남편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가 충돌한 페르시아 전쟁 중이던 기원전 480년, 아르테미시아는 크세르크세스 1세의 원정에 합류하여 살라미스 해전에 참전했습니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전쟁 지휘관들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었던 아르테미시아는 적군이 더 강력하다며 회전을 피할 것을 진언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조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이 전투는 페르시아군에게 처참한 대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전장에서의 도주
아르테미시아는 직접 부대를 이끌고 전투에 임했으며, 뛰어난 투지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전투 과정에서 그녀는 크세르크세스의 형제이자 제독인 아리아비그네스의 시신을 바다에서 건져 올려 왕에게 바치기도 했습니다.
패색이 짙어지자 좁은 수로에 갇힌 페르시아 함선들은 도주를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아르테미시아는 자신의 탈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주저 없이 아군 배 한 척을 격침시켰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좋은 기회였던 모양입니다. 침몰한 배의 선주였던 리키아의 칼린다 왕 다마시티모스와는 이미 오랜 불화가 있었던 터였습니다. 전황을 지켜보던 크세르크세스는 여왕이 그리스 배를 격침시킨 것으로 착각하고, "내 백성들은 여자가 되었고, 내 여자들은 남자가 되었다"라며 탄식했다고 전해집니다.
살라미스 해전 이후에도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크세르크세스는 군사 작전의 후속 방침에 관해 아르테미시아의 조언을 경청하고 따랐으며, 이후 그녀를 에페소스로 보내 자신의 서자들을 돌보게 했다고 합니다.
한편 설화 중에는 아르테미시아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진 끝에 절망하여, 바위로 된 곶 위에서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참고 자료
위키백과 '아르테미시아 1세'
영문 위키백과 'Artemisia I of Ca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