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제미슨(Mary Jemison, 1743~1833)은 어린 시절 원주민에게 납치되어 그들의 문화에 완전히 동화된 미국 여성입니다. '데헤와미스(Deh-he-wä-mis)'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그녀는 자신이 속한 부족을 위해 조약 협상을 직접 이끌었다는 점으로 가장 널리 기억되고 있습니다.
메리의 납치
제인과 토머스 제미슨의 딸로 태어난 메리는 1743년 가을, 아일랜드 출신 부모와 함께 신대륙으로 향하던 배 위에서 태어났습니다.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가족은 다른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이민자들과 합류해 값싼 땅을 찾아 펜실베이니아 서부로 이주했습니다. 유럽인 정착의 한계선, 즉 프런티어(개척 경계 지역)에 이른 제미슨 가족은 결국 이로쿼이족의 영토 안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1754년부터 프랑스와 영국 간의 대립은 북미 대륙에서 정복 전쟁(War of the Conquest)이라 불리는 공개 충돌로 번졌습니다. 양국은 특히 국경 지역에서 원주민 동맹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1755년 어느 아침, 프랑스인 4명과 쇼니족 6명으로 구성된 습격대가 메리와 그녀의 부모, 형제자매들(두 명의 큰 오빠들은 제외), 그리고 이웃 가정의 어린 소년 한 명을 사로잡았습니다. 포트듀케인(Fort Duquesne, 현재의 피츠버그)으로 향하던 길에서 쇼니족은 포로들을 차례로 살해했지만, 메리와 어린 소년은 입양하기에 충분히 어리다고 판단되어 목숨을 건졌습니다.
세네카족 사이에서
요새에 도착한 메리 제미슨은 세네카족에게 넘겨져 그들의 마을로 옮겨졌습니다. 그곳에서 한 가족에게 입양된 그녀는 '데헤와미스(Deh-he-wä-mis)'라는 새 이름을 받았는데, 이는 "예쁜 아이" 또는 "귀여운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세네카족과 함께 성장한 그녀는 델라웨어족 남성 셰닌지(Sheninjee)와 결혼하여 아버지의 이름을 딴 아들 토머스를 낳았습니다. 두 사람은 제너시 강(Genesee River)을 따라 약 1,100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여정에 올라, 현재 뉴욕 주에 해당하는 세가훈다 계곡(Sehgahunda Valley)을 향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병을 얻은 셰닌지는 목적지에 닿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아내와 아들만이 그곳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빅 트리 조약(The Treaty of the Big Tree)
과부가 된 데헤와미스와 그녀의 아들은 남편의 친척들에게 따뜻하게 맞이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히아카투(Hiakatoo)라는 세네카족 남성과 재혼하여 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세네카족은 식민 개척자들을 몰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영국 편에 섰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영국의 동맹이었던 세네카족은 미합중국에 자신들의 땅을 내주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때 데헤와미스는 스스로 나서서 협상과 토지 매각에 참여했습니다. 뛰어난 협상력을 발휘한 그녀는 1797년 9월 체결된 '빅 트리 조약'을 통해 세네카족이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토지를 양도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데헤와미스는 "제너시의 백인 여인(the White Woman of Genesee)"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평생을 세네카족 곁에서 보냈습니다. 말년에는 제임스 E. 시버(James E. Seaver)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이 기록은 1824년 『메리 제미슨 부인의 생애 서사(Narrative of the Life of Mrs. Mary Jemison)』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오늘날까지 귀중한 역사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데헤와미스, 즉 메리 제미슨은 1833년 9월 19일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