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망디를 물려받은 장남
로베르 2세 쿠르트즈(Robert II Curthose, 1051~1134)는 정복자 윌리엄의 장남으로, 아버지의 사후 노르망디 공국을 상속받았다. 그의 별명인 '쿠르트즈(Curthose)'는 프랑스어로 '짧은 부츠'를 의미하는데, 작은 신체에 어울리는 짧은 다리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노르망디 공국의 계승은 그에게 자유를 안겨준 동시에 끊임없는 무정부 상태와 내분이라는 짐도 함께 지워주었다. 성격이 유약하고 통치력이 부족했던 로베르는 영지 귀족들의 반란과 형제들과의 권력 다툼 속에서 공국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형제와 맺은 상속 협정
1091년, 로베르는 잉글랜드 국왕으로 즉위한 동생 윌리엄 루푸스(기욤 르 루)와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의 핵심은 두 형제 중 한 명이 먼저 사망하면 살아남은 자가 자동으로 상대방의 영토를 계승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노르망디와 잉글랜드를 둘러싼 형제 간의 긴장을 일시적으로 완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제1차 십자군 원정과 예루살렘 함락
1096년, 로베르는 노르망디 공국을 동생 윌리엄에게 담보로 넘기고 제1차 십자군에 참가했다. 그는 유럽 여러 군주들과 함께 성지 수복 원정에 나섰고, 1099년 예루살렘 함락 전투에 직접 참전하는 등 눈부신 무공을 세웠다. 십자군 원정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고 평가된다.
동생 헨리와의 최후 대결
1100년, 운명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잉글랜드 국왕 윌리엄 루푸스가 사냥 중 화살에 맞아 사망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막내동생 헨리 보클레르는 주저 없이 잉글랜드 왕위를 차지했다. 곧바로 십자군에서 돌아온 로베르는 자신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잉글랜드 침공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오히려 왕위를 넘보던 헨리는 노르망디마저 되찾으려는 야망을 품게 되었다.
1106년, 두 형제의 갈등은 마침내 텡셰브레 전투(Battle of Tinchebray)로 폭발했다. 이 결정적인 전투에서 로베르는 패배하여 포로로 잡혔다. 헨리는 그를 석방하지 않고 잉글랜드 카디프 성에 유폐시켰고, 로베르는 무려 28년간의 감금 생활 끝에 1134년 세상을 떠났다.
십자군의 영웅이었으나 통치자로서는 실패한 로베르 2세 쿠르트즈의 삶은, 중세 봉건 사회에서 형제 간 권력 다툼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