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툴룬(Khutulun)은 아이기아르네(Aigiarne), 아이유루그(Aiyurug), 호톨 차간(Khotol Tsagaan), 아야루크(Ay Yaruq, '달빛'이라는 뜻)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린다. 그녀는 칭기즈 칸의 직계 후손이자 몽골 제후 카이두(Qaïdu)의 딸로, 당대 최고의 레슬러이자 전사로 이름을 떨쳤다. 쿠툴룬은 아버지를 따라 수많은 군사 원정에 동행하며 전장에서 활약했다.
칭기즈 칸의 후예
몽골 제후 카이두의 딸로 1260년경 태어난 쿠툴룬은, 칭기즈 칸의 손자 오고타이(Ögedeï, 토레게네 카툰의 남편)의 증손녀였다. 그녀가 태어날 무렵 몽골 대칸인 몽케(Möngke, 톨루이의 아들이자 칭기즈 칸의 손자)가 사망하면서, 몽케의 두 동생이자 카이두의 숙부인 아리크 부카(Ariq Boqa)와 쿠빌라이 칸(Kublai Khan) 사이에 계승 전쟁이 발발했다. 카이두는 아리크 부카를 지지했으나, 결국 쿠빌라이가 승리했다.
칭기즈 칸과 그 후손들의 연이은 정복으로 몽골 제국은 중국 거의 전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쿠빌라이는 수도를 칸발리크(훗날 베이징)로 옮기고 원나라를 건국했으며, 중국식 이름인 '세조 황제(Emperor Shizu)'를 칭했다. 카이두는 쿠빌라이가 중국만 중시하고 몽골 본토의 이익을 외면한다고 여겨, 그에게 맞서며 최대 라이벌이 되었다.
칭기즈 칸의 아들들로부터 갈라진 여러 씨족 사이에 내분이 일었고, 오고타이 가문의 제후들은 톨루이 가문을 몰아내려 했다. 카이두는 차가타이 한국(자타이드)을 격파하고 쫓아낸 뒤, 스스로 황제의 칭호를 취했다. 1280년경, 젊은 쿠툴룬은 서쪽으로는 아랄 해, 북쪽으로는 시베리아 중부, 남쪽으로는 인도, 동쪽으로는 몽골 서부에 이르는 광대한 중앙아시아 최강국의 공주였다.
위대한 전사
카이두의 총애를 받으며 자란 쿠툴룬은 형제들 사이에서 자라며 탁월한 기마술, 궁술, 무예를 익혔다. 그녀는 아버지의 군사 원정, 특히 원나라와의 전투에 동행해 직접 싸웠다. 마르코 폴로는 그녀를 "적진으로 돌진해 적장을 사로잡아 매가 사냥감을 낚아채듯 아버지 앞에 데려다 놓는 비범한 여전사"라고 기록했다.
쿠툴룬에게 청혼하는 구혼자는 많았으나, 그녀는 결혼할 뜻이 없었다. 이에 그녀는 "나를 레슬링에서 이기는 자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고, 지는 자는 말 100필을 바쳐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녀의 연전연승은 전설이 되었고, 패한 구혼자들이 바친 말이 무려 10,000필에 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가문의 적들이 "쿠툴룬이 아버지와 근친상간 관계"라는 소문을 퍼뜨리자,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녀는 이 관행을 중단했다. 이후 카이두의 충신 전사 중 한 명과 아무런 조건 없이 결혼했는데, 사료마다 그 남편의 신원이 달라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일부 사료에 따르면 카이두는 쿠툴룬을 칸국의 후계자로 삼고자 했으나, 남성 친족들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카이두는 1301년 사망했고, 쿠툴룬은 5년 뒤인 1306년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