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혁명과 제정기를 관통한 정치가
르브뤼 샤를 프랑수아(Charles François Lebrun, 1739~1824)는 프랑스 혁명기부터 나폴레옹 제정기에 이르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낸 대표적인 프랑스 정치가입니다. 노르망디 출신으로 법률가로서 경력을 쌓은 그는, 재능과 온건한 성격 덕분에 혁명이라는 격동 속에서도 여러 차례 요직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입헌의회 의원과 원로원 시절
르브뤼는 프랑스 혁명 직후 소집된 입헌의회(Corps législatif) 의원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정치 질서의 설계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공포정치기(테러리즘 시대)에 위험에 처해 투옥되기도 했으나, 목숨을 건져내고 이후 정치 무대로 복귀했습니다.
1795년에는 원로회의(Council of Elders, 상원격 기관) 의원으로 선출되어 혁명 후반부 정국 운영에 한몫했습니다.
제3 집정관으로 임명되다
1799년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통령정부를 수립하면서 세 명의 집정관을 두었습니다. 르브뤼는 캉바세레스(Jean Jacques Régis de Cambacérès)와 함께 각각 제3·제2 집정관으로 임명되었고, 나폴레옹이 제1 집정관이 되면서 체제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르브뤼는 주로 재정 및 국고 업무를 담당하며 행정 실무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제국 대재정관과 네덜란드 통치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여 프랑스 제1제국을 선포하자, 르브뤼는 '제국 대재정관(Archtreasurer of the Empire)'이라는 명예로운 고위 직책에 임명되었습니다.
1810년, 왕위에 있던 루이 보나파르트(Louis Bonaparte)가 형 나폴레옹과의 갈등 끝에 네덜란드 왕위를 스스로 내려놓자, 르브뤼는 해당 지역의 총독 격인 총감독관으로 파견되어 네덜란드를 직접 통치하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이후 1813년까지 그 지역 행정을 운영했습니다.
말년
나폴레옹 몰락 이후 부르봉 왕정복고를 맞이했지만, 르브뤼는 박해받지 않고 조용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그는 1824년 85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쳤으며, 프랑스 혁명·통령정부·제정이라는 근대 프랑스의 격변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인물로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