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이코 천황(推古天皇, 554~628)은 일본 역사상 최초의 여성 천황으로, 전통적인 계보상 제33대 군주입니다.
천황의 딸이자 천황의 아내
스이코 천황은 본래 누카타베(額田部) 공주라는 이름으로, 소가노 기타시히메(堅塩媛)와 제29대 킨메이 천황 사이에서 태어난 딸입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그녀의 아버지 킨메이 천황은 여섯 명의 후비 사이에서 열여섯 명의 아들과 아홉 명의 딸을 두었는데, 누카타베는 그중 아홉 번째 자녀였습니다.
킨메이 천황은 571년 붕어했고, 누카타베의 이복 오빠인 누나쿠라 후토다마시키가 뒤를 이어 비닷스 천황(敏達天皇)으로 즉위했습니다. 비닷스 천황은 히로히메(広姫)와 혼례를 올렸고, 누카타베는 그의 후궁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576년 황후 히로히메가 세상을 떠난 뒤 누카타베가 정식 황후의 자리에 올랐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아홉 명의 자녀가 태어났습니다.
치열한 계승 분쟁
비닷스 천황의 재위 기간 동안 누카타베의 출신 가문인 소가씨(蘇我氏)와 모노노베씨(物部氏)는 일본에 불교를 받아들이고 널리 퍼뜨릴 것인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585년 비닷스 천황이 붕어하자 누카타베의 형제이기도 한 이복 동생 요메이 천황(用明天皇)이 즉위했지만, 그의 재위는 짧았습니다.
요메이 천황이 2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소가씨와 모노노베씨 사이에 계승 분쟁이 폭발했고, 결국 소가씨가 승리했습니다. 이후 누카타베의 또 다른 이복 오빠가 스슌 천황(崇峻天皇)으로 옥좌에 올랐으나, 강대한 소가씨의 지지를 잃으면서 592년 소가씨의 수장 소가노 우마코(馬子)에 의해 암살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누카타베가 스이코 천황으로 즉위했습니다. 그녀는 일본 역사상 최초로 여제(女帝)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며, 이후 1771년까지 여덟 명의 여성이 천황으로 즉위했습니다.
스이코 천황의 통치
스이코 천황이 즉위한 다음 해, 요메이 천황의 아들인 쇼토쿠 태자(聖徳太子)가 섭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쇼토쿠 태자와 소가노 우마코가 정치 실권의 상당 부분을 쥐고 있었지만, 스이코 천황은 자신만의 독립성을 유지하며 때로는 그들의 결정에 맞서 반대 입장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녀는 중국 수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새롭게 열기 위해 최초의 견수사(遣隋使)를 파견한 주역이었으며, 중국 황제에게 보낸 국서에는 “동방의 천황이 서방의 황제에게 인사를 보낸다”는 문구가 담겨 있었습니다.
스이코 천황의 치세는 594년 불교의 공인, 관료 직제를 혈통이 아닌 능력 중심으로 개편한 12관위제(冠位十二階)의 시행, 그리고 불교와 유교 사상에 바탕을 둔 헌법(十七条憲法)의 채택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스이코 천황은 628년 4월 74세를 일기로 서거했습니다. 그녀가 죽은 뒤 권력 다툼이 벌어졌고, 최종적으로 비닷스 천황의 손자인 조메이 천황(舒明天皇)이 뒤를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