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장마리 콜로 데르부아(Jean-Marie Collot d'Herbois, 1750~1796)

장마리 콜로 데르부아(Jean-Marie Collot d'Herbois, 1750~1796)

장마리 콜로 데르부아는 프랑스 혁명기의 배우이자 극작가, 그리고 급진 혁명가였다. 무대에 서다가 리옹 극장의 감독으로까지 활약한 그는,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 무대에 뛰어들어 혁명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부상했다.

혁명 정치로의 입문

그는 자코뱅 클럽의 서기를 맡았으며, 파리 코뮌 의원으로서 1792년 8월 10일 왕정 전복 사건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같은 해 9월에 벌어진 '9월 학살' 역시 지지하며 과격한 성향을 분명히 드러냈다.

공안위원회와 공포정치

국민공회 의원으로 선출된 뒤에는 공안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빌로바렌(Billaud-Varenne)과 함께 내정 정책을 총괄했다. 그는 공포정치(테러)의 주요 설계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되며, 특히 1793년 리옹에서 일어난 왕당파 반란을 철저히 진압해 도시 전체에 엄중한 보복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리옹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라는 말을 남길 만큼 강경한 태도로 유명했다.

테르미도르의 반전과 최후

그러나 로베스피에르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1794년 7월 27일(혁명력 테르미도르 9일)의 쿠데타에서 그는 로베스피에르를 배신하고 그의 몰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후 그 자신도 숙청 대상이 되어 1795년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의 카옌(Cayenne)으로 추방되었고, 1796년 현지에서 열병으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