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레 뮌터(Gabriele Münter, 1877~1962)는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등과 함께 예술가 그룹 '청기사(Der Blaue Reiter)'를 이끈 핵심 멤버입니다.
칸딘스키와의 운명적인 만남
1877년 2월 19일 베를린의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난 가브리엘레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피아노도 배웠지만 진정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회화였고, 부모님 역시 딸의 열정을 아낌없이 응원해 주었습니다. 당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미술 아카데미 입학이 좌절되자 개인 교사에게 먼저 배운 뒤 뒤셀도르프 여자미술학교에 들어갔지만, 그곳의 교육에 실망하여 학교를 옮기기로 결심합니다. 21세에 부모를 잃고 상당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녀는 이를 계기로 미국으로 건너가 언니와 함께 두 해 동안 완전한 독립과 자유 속에서 생활했습니다.
독일로 돌아온 그녀는 바실리 칸딘스키가 이끄는 뮌헨의 팔란크스(Phalanx) 미술학교에 들어가 회화, 조각, 판화를 배웠습니다. 칸딘스키는 그녀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1902년 여름, 바이에른 알프스에서 열리는 자신의 하계 강좌에 함께하자고 초대했으며, 이 시기에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합니다. 가브리엘레는 학교가 문을 닫을 때까지 약 1년 더 그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칸딘스키가 기혼자였음에도 두 사람은 관계를 공개적으로 드러냈고 함께 살아갔습니다.
청기사(Der Blaue Reiter)의 결성
칸딘스키와 뮌터는 함께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당대 수많은 예술가들과 우정을 쌓았습니다. 가브리엘레는 여행의 기록을 일기로 남겼고, 스케치와 사진으로 그 순간들을 하나하나 담아냈습니다. 1906년부터 1907년까지 파리에 머무는 동안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작품과 신흥 운동인 야수파(Fauvism)를 접하게 되었는데, 이는 그녀의 예술 세계를 완전히 바꿔놓는 계기가 됩니다. 폴 고갱(Paul Gauguin)에게서도 영향을 받은 그녀는 때때로 회화용 칼로 그림을 그렸으며, 판화와 리소그래프, 회화 작품을 꾸준히 제작했습니다. 특히 밝고 강렬하며 표현력 있는 색채로 풍경을 그리는 일에 깊은 애착을 보였습니다.
1909년 가브리엘레는 바이에른의 작은 마을 무르나우암슈타펠제(Murnau am Staffelsee)에 집을 마련해 여름마다 연인과 함께 지내며 뮌헨 전위 예술가들을 맞이했습니다. 칸딘스키와 함께 인상주의와 결별한 예술가들의 모임인 '뮌헨 신미술가협회'를 결성했지만, 내부 갈등으로 모임은 금세 흩어졌고, 1911년 두 사람은 협회를 떠나 표현주의 그룹 '청기사(Der Blaue Reiter)'를 창설합니다. 파울 클레(Paul Klee) 역시 이 그룹에 합류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칸딘스키는 러시아로 돌아갔고, 가브리엘레는 몇 년간 스칸디나비아에 머물렀습니다. 1917년 두 사람의 관계는 최종적으로 끝이 났고, 만성 우울증을 앓게 된 그녀는 오랫동안 붓을 놓아야 했습니다. 1925년 베를린으로 이주한 뒤에는 다시 펜을 들었지만, 이번에는 풍경이 아닌 여성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1929년부터 1930년까지의 파리 체류를 거쳐 새로운 동반자 요하네스 아이히너(Johannes Eichner)와 함께 무르나우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에 복귀했고, 여성 초상화와 더불어 정물화와 추상 작품도 제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가브리엘레의 작품들은 당대 다른 많은 예술가들처럼 나치에 의해 '퇴폐예술'로 규정되어 전시가 금지되었습니다. 그녀는 청기사 멤버들의 작품을 포함해 수십 점의 그림과 수백 점의 드로잉을 무르나우의 집에 숨겼고, 가택 수색이 있었음에도 지하실에 감춰둔 작품들을 끝까지 지켜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뮌헨에서 청기사 작품 회고전을 개최했고, 자신의 작품들 또한 독일 전역에서 널리 선보였습니다. 1957년 80세 생일을 맞아 그녀는 평생 모은 컬렉션 전체를 뮌헨 시에 기증했습니다.
가브리엘레 뮌터는 1962년 5월 19일 무르나우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저택은 이후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가브리엘레 뮌터와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을 전시하며, 두 거장의 예술 정신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