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나발로나 1세(Ranavalona Ire, 약 1788년~1861년)는 1828년부터 1861년까지 33년간 마다가스카르 왕국을 통치했습니다. 그녀의 치세는 유럽 열강의 팽창주의에 맞선 저항과 강력한 권위주의 통치로 특징지어집니다.
마다가스카르의 여왕이 되다
본명은 라보도난드리아남포이니메리나(Rabodonandrianampoinimerina)로, '안드리아남포이니메리나의 순수한 손녀'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녀는 1788년에서 1790년 사이에 태어났으며, 안드리아남포이니메리나 국왕의 사촌의 딸이었습니다. 국왕의 자매인 랄레소카에게 입양되어 말라가시 귀족 사회에서 성장했고, 훗날 선왕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라다마의 정실 부인이 되었습니다. 라다마는 1821년 왕위에 올라 라다마 1세가 되었으나, 1828년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에 귀족들은 왕위 계승 분쟁이나 내전을 막기 위해 그의 미망인을 새로운 군주로 옹립했습니다.
마다가스카르의 여왕이 된 라나발로나 1세는 선대 왕들이 추진한 영토 확장 정책을 이어받아 정복 지역을 평정하는 원정을 벌였고, 특히 무기 분야를 중심으로 왕국의 근대화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즉위 다음 해 프랑스가 마다가스카르에 여러 차례 공격을 감행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러한 침략은 그녀로 하여금 유럽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1820년 영국과 체결한 기독교 선교사 활동 허용 협약의 무효화를 시도했고, 거절당하자 이듬해 선교사들을 국외로 추방했습니다. 이후 기독교를 탄압하여 개종자들을 '조국의 배신자'로 규정했으며, 신민들의 예배 참여마저 금지했습니다.
유럽에 맞선 위대한 군주
라나발로나 1세는 유럽의 영토 팽창주의에도 강경하게 맞섰습니다. 프랑스가 연안 지역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해당 지역들을 먼저 복속시켰고, 1845년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했습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8년간 유럽과의 무역을 전면 중단하고, 공격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유럽 상인들에게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다만 왕국의 재정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이 기간을 제외하고는 유럽과의 교역 관계를 유지하는 현실적인 외교 노선을 구사했습니다.
라나발로나 1세의 치세는 섬의 발전, 근대화, 그리고 무엇보다 독립 수호라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됩니다.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전역을 식민지화해 가던 시대에 마다가스카르의 주권을 지켜낸 그녀는, 왕국 내부에서 위대한 여왕이자 국가적 자부심의 상징으로 추앙받았습니다.
라나발로나 1세는 33년간의 통치를 마무리하고 1861년 8월 1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