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베릴 마컴(Beryl Markham): 대서양을 동에서 서로 건넌 최초의 여성 비행사

영국 출신 케냐의 항공 개척자 베릴 마컴(Beryl Markham, 1902~1986)은 강풍 때문에 역방향보다 훨씬 위험한 동쪽에서 서쪽으로의 단독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최초의 여성입니다. 강렬한 개성의 소유자였던 그녀는 회고록 『밤과 함께 서쪽으로(West with the Night)』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야생에서 자란 소녀

베릴은 1902년 10월 26일 잉글랜드 중부의 작은 마을 애슈웰(Ashwell)에서 클라라 아그네스 알렉산더 클러터벅과 찰스 볼드윈 클러터벅 사이의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네 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가족을 이끌고 당시 영국 식민 제국의 땅이던 영국령 동아프리카, 오늘날의 케냐로 이주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나쿠루와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근처의 은조로(Njoro)에 농장을 마련했습니다.

소녀는 이 새로운 삶을 마음껏 즐겼지만, 어머니는 외딴 시골의 고립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장남 리처드를 데리고 곧잘 잉글랜드로 돌아가 버립니다. 베릴은 이 버림을 끝내 어머니에게 용서하지 않았고, 대신 아버지와 훨씬 깊은 유대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베릴은 아프리카 야생 한가운데서 자라며 주변을 자유롭게 탐험하고 이웃 부족들과 친구가 되는 커다란 자유를 누렸습니다. 말을 돌보는 법, 이웃들의 언어, 사냥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거칠고 억누를 수 없는 성격 탓에 나이로비의 사립학교에서 퇴학당했고, 베릴은 학업 대신 경마와 말 사육에 몰두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매우 어린 나이에 케냐 최초의 공인 경주마 조련사가 되었고, 스스로도 수많은 경주에 기수로 출전했습니다.

세 번의 결혼

총명하고 아름다운 베릴은 안정적인 결혼 생활보다 설렘과 유혹을 더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열여섯 살에 첫 남편과 결혼했고, 평생 세 번의 결혼과 함께 수많은 스캔들이 따라다녔습니다. 두 번째 남편은 영화 프로듀서 맨스필드 마컴(Mansfield Markham)으로, 그녀는 그의 성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불륜, 특히 영국 왕실의 글로스터 공 헨리와의 관계 의혹은 결혼을 빠르게 끝장냈습니다. 아들 제버스(Gervase)는 베릴의 어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대서양 횡단 비행

연인이었던 비행사 톰 캠벨 블랙(Tom Campbell Black)의 권유로 베릴 마컴은 항공의 세계에 발을 들입니다. 상업용 조종사 면허를 취득한 최초의 여성이 된 그녀는 승객·우편물·화물 운송 업무를 수행하는 한편,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대서양 횡단 원정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강력한 편서풍을 정면으로 뚫고 바다 위 고공을 날아야 하는 이 도전은 극도로 위험한 것으로, 스코틀랜드 비행사 짐 몰리슨(Jim Mollison)이 이룩한 바 있었고, 이에 도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여성 파일럿들도 있었습니다. 1936년 당시까지 유럽–뉴욕 구간을 비행한 이는 아무도 없었고, 가장 험난한 방향으로 대서양을 건넌 여성 또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베릴은 이 두 가지 모두에서 개척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1936년 9월 4일, 베릴은 단발기 퍼시벌 베가 걸(Percival Vega Gull)을 몰고 잉글랜드 애빙던(Abingdon)을 이륙했습니다. 약 20시간의 비행 끝에, 혹한으로 연료 계통이 손상되어 연료가 바닥나 캐나다 노바스코샤에 불시착했지만 다행히 무사했습니다. 뉴욕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대서양을 횡단한 최초의 여성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위업으로 베릴 마컴은 아멜리어 이어하트(Amelia Earhart), 엘렌 부셰(Hélène Boucher)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항공사의 개척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회고록 『밤과 함께 서쪽으로』

위업을 이룩한 뒤 베릴 마컴은 한동안 미국으로 옮겨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어린 왕자』의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를 만나 친분을 쌓았고, 그의 격려로 글쓰기라는 새로운 모험에 뛰어들게 됩니다. 1942년, 그녀는 비행 모험담을 담은 『밤과 함께 서쪽으로(West with the Night)』를 출간했습니다. 문장력을 두고 언론의 극찬을 받았지만 책 자체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후 이 책은 1980년대에 재발견되어 재출간되면서 비로소 폭발적인 호응을 얻게 됩니다. 베릴은 이후 다른 책을 내지 않았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이 회고록이 실제로는 세 번째 남편 라울 슈마허(Raoul Schumacher)가 집필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1952년 베릴은 미국을 떠나 케냐로 돌아가 정착했고, 나라가 독립을 쟁취하는 역사적 순간을 지켜보았습니다. 다시 경주마 조련사가 된 그녀는 생계를 꾸리기도 벅찬 가난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1982년 책이 다시 세상에 나왔을 때 그녀는 빈궁 속에 살고 있었고, 책이 거둔 성공은 그녀에게 하늘이 내린 듯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베릴 마컴은 회고록의 성공 3년 후인 1986년 8월 3일, 8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