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여황제 즈워디투: 격변의 시대를 통치하다

즈워디투(1876~1930)는 20세기 초 에티오피아를 통치한 여황제로, 그녀의 재위 기간은 나라에 큰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였습니다.

너무 이른 결혼

1876년 4월 29일에 태어난 즈워디투는 귀족 아베치(Abechi)의 딸이었습니다. 아베치는 훗날 메넬리크 2세(Menelik II)로서 에티오피아의 왕(네구스)이 되는 살레 마리암(Sahle Maryam)의 동반자였습니다. 아이는 꽃 이름을 따 '아스칼라 마리암(Askala Maryam)'이라는 세례명을 받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즈워디투라고 불렀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즈워디투는 아버지와 새 어머니 바파나(Baffana) 밑에서 자랐으며, 함께 인정받은 두 자녀인 아스파우 워센(Asfaw Wossen)과 셰와레그가(Shewaregga)와 함께 성장했습니다. 셰와레그가는 훗날 메넬리크의 후계자의 어머니가 됩니다.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즈워디투는 네구스 요하네스 4세(Yohannes IV)의 아들 아라야 셀라시에 요하네스(Araya Selassie Yohannes)와 약혼합니다. 이는 메넬리크가 경쟁자 요하네스의 권위를 인정하도록 하기 위한 정치적 결합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1886년, 소녀가 겨우 열 살이었을 때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없었고, 아라야가 1888년 사망하자 즈워디투는 아버지에게 돌아갔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버지와 시아버지, 즉 경쟁 관계에 있던 두 통치자 사이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후 두 번의 결혼이 더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즈워디투는 마침내 고위 군인이자 아버지의 새 아내 타이투 베툴(Taytu Betul)의 조카인 구그사 웰레(Gougsa Wellé)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전의 결혼들과 달리 이 결합은 오래 지속되었고, 화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권력의 중심에 선 즈워디투

요하네스가 사망하자 메넬리크는 에티오피아 귀족들의 지지를 받아 제위에 올랐습니다. 남성 상속자가 없던 그는 즈워디투와 함께 자란 셰와레그가의 아들 이야수(Iyasu)를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권력욕과 카리스마를 지닌 여인이었던 타이투 베툴은 즈워디투를 남편의 후계자로 만들려 음모를 꾸몄지만 실패했습니다. 1913년 메넬리크가 사망하자 이야수가 새로운 네구스 네게스트(Negus Negest), 즉 에티오피아 황제가 되었습니다.

무슬림 소수민족의 정치적 통합을 추진한 이야수는 기독교 엘리트들의 분노를 샀고, 제1차 세계대전 중 동맹국 진영에 접근함으로써 유럽 열강들의 경계심마저 자극했습니다. 1916년 9월 27일, 황제는 쿠데타로 축출되었고 즈워디투가 그의 후임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 기회에 궁으로 다시 불려난 계모 타이투 베툴이 이 정권 교체에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즈워디투는 1917년 2월 대관식을 거행했습니다.

즈워디투의 통치

섭정 왕자이자 왕위 계승자인 타파리 마코넨(Täfäri Makonnen), 훗날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의 보좌를 받으며 즈워디투는 주로 의례적인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유폐된 이야수에게서 왕위를 빼앗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린 그녀는 그를 위해 변호하고 적절한 생활 조건이 보장되도록 배려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여황제와 왕위 계승자 사이의 간격은 점점 벌어졌습니다. 국가 현대화를 추진하는 타파리 마코넨과 달리 즈워디투는 더 보수적인 성향이었고, 전통과 종교에 깊은 애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타파리 마코넨은 점차 권력과 영향력을 확장해갔고, 1928년에는 여황제가 그에게 네구스 칭호를 수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타파리 마코넨에 맞선 여러 차례의 봉기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1930년에는 즈워디투의 남편 구그사 웰레가 그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려 했으나 실패하고, 1930년 3월 안켐 전투(Battle of Anchem)에서 전사했습니다.

1930년 4월 2일, 남편이 사망한 지 겨우 이틀 만에 즈워디투 또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부 민간 설화는 구그사 웰레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그녀를 죽였다고 주장하고, 어떤 이들은 그녀가 아직 전투 결과를 알지 못한 상태였다고 말하며, 또 다른 이들은 독살설을 내세웁니다. 당뇨병이나 장티푸스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그녀가 서거한 다음 날, 타파리 마코넨은 하일레 셀라시에 1세(Haile Selassie I)로서 에티오피아의 네구스 네게스트, 즉 황제로 공식 선포되었습니다.

즈워디투는 아버지와 계모 타이투 베툴의 곁, 메넬리크 궁전 안의 영묘에 잠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