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노예에서 군인으로,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군인 캐세이 윌리엄스

노예로 태어난 캐세이 윌리엄스(Cathay Williams, 1844~1893)는 남성이라는 허위 신분으로 미국 육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녀는 미국 육군에 입대한 최초의 흑인 여성이자, 남성으로 위장해 복무한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인물입니다.

남북전쟁과 강제 징집

캐세이 윌리엄스는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근교의 인디펜던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노예였고 아버지는 해방된 자유민이었지만, 당시 관행상 어머니의 신분을 따랐기 때문에 그녀 역시 노예의 신분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미주리주 제퍼슨시티의 존슨 농장에서 가사 노예로 성장했습니다.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했을 때 캐세이는 17세였습니다. 전쟁 초기 북군이 제퍼슨시티를 점령하면서 현지의 노예들을 강제로 동원했고, 여성들은 요리사, 하녀, 간호병 등으로 징집되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고 북군 병사들이 제퍼슨시티에 들어왔을 때, 나와 다른 유색인종 사람들을 리틀록으로 데려갔다. (...)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장교들의 요리를 맡겼지만 나는 늘 집안일 노예였고 요리할 줄 몰랐다. 리틀록에 온 뒤에야 요리를 배웠고, 피아 릿지 전투 때도 군대와 함께 있었다."

— 1876년 1월 2일 세인트루이스 데일리 타임스에 게재된 캐세이 윌리엄스의 인터뷰 중

이후 5년간 캐세이는 군대를 따라 아칸소, 루이지애나, 조지아, 워싱턴 D.C. 등지를 전전하며 수많은 전투를 목격했고, 군에 복무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들과도 만나게 됩니다. 1865년 전쟁이 끝난 후에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근처의 군사학교에서 근무했습니다.

남장하고 육군에 입대하다

남북전쟁의 종결은 미국 내 노예제 폐지를 의미했지만, 캐세이에게는 여전히 생계 문제가 절박한 과제였습니다. 그녀는 군대가 가장 확실한 생계 수단이라고 판단하고 입대를 결심합니다. 당시 여성은 군인이 될 수 없었기에, 1866년 11월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라는 남성 이름으로 위장해 입대했습니다. 같은 연대에 복무하던 사촌과 친한 친구 단 두 사람만이 그녀의 정체를 알았지만, 끝내 밀고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여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사촌과 특별한 친구, 단 두 명뿐이었다. 그들은 절대 나를 밀고하지 않았다. 그들이 내 입군의 한 이유이기도 했다. 또 다른 이유는 친척이나 친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입대 직후 캐세이는 천연두에 걸려 입원하게 됩니다. 병후유증에 긴 행군, 뉴멕시코의 혹독한 더위까지 겹치면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잦은 입원을 거듭했습니다. 결국 한 의사가 그녀의 비밀을 알아내 지휘부에 보고했고, 1868년 10월 그녀는 군에서 제대하게 됩니다.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남자들은 모두 나를 쫓아내려 했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정말 심하게 대했다."

제대 이후의 삶

제대 후 캐세이 윌리엄스는 콜로라도주에 정착해 요리사와 세탁부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결혼도 했지만 이 결혼은 참극으로 끝났습니다. 남편이 시계, 돈, 마필 한 쌍을 훔쳐 달아나자 그녀는 남편을 체포하도록 신고했습니다. 이 충격적인 경험 이후 그녀는 콜로라도주 트리니다드로 이주해 재봉사로 일했습니다. 군 복무 시절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아온 세인트루이스 기자에게 그녀는 새로운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캐세이의 건강은 계속 악화되어 갔습니다. 당뇨병과 류머티즘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발가락이 절단되어 목발에 의지해 걸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1891년 그녀는 군 복무에 대한 장애 연금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그녀의 정확한 사망 날짜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연금 신청이 거부된 이후인 1892년에서 1893년 사이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관련 도서

『Cathy Williams: From Slave to Buffalo Soldier』 – 필립 토머스 터커(Phillip Thomas Tucker)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