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팔(Bhopal)의 베굼, 술탄 자한(Sultan Jahan, 1858~1930)은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책을 펼치며 교육을 발전시키고 농업을 진흥했으며, 공중 보건을 크게 개선한 여성 통치자입니다.
베굼 가문의 후손
'사르카르 암만(Sarkar Amman)'으로도 불린 술탄 자한은 1858년 7월 9일 인도 보팔에서 태어났습니다. 보팔은 1818년부터 영국 동인도 회사의 종주권 아래에 있는 번왕국이 되었고, 1819년 이후 '베굼(Begum)'이라 불리는 여성 군주들이 다스려 왔습니다. 초대 쿠드시아 베굼(Qudsia Begum)을 시작으로 그녀의 딸 시칸다르(Sikandar), 손녀 샤 자한(Shah Jahan)이 차례로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사르카르 암만은 샤 자한과 남편 나시르 우드 다울라(Nasir ud-Daula)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이자 유일하게 생존한 자녀였습니다. 어머니, 외할머니, 증조모 모두가 베굼이었던 집안 출신입니다. 1868년 외할머니 시칸다르가 사망하자, 전 해 남편을 잃고 젊은 과부가 된 어머니가 '술탄 샤 자한 베굼 사히바'라는 이름으로 즉위했습니다. 당시 열 살이던 사르카르 암만은 후계자로 선포되었습니다.
샤 자한은 뛰어난 통치력과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33년간 재위하며 행정과 군제를 개혁하고, 가뭄에 대비하고 농업을 진흥하기 위해 댐과 인공 호수를 건설했습니다. 또한 세금 제도를 개편하고 인구 조사를 실시하여 토후국의 인구 구조에 맞춘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1874년 2월, 열여섯 살이 되기 전에 사르카르 암만은 알리 자(Ali Jah), 이티샴 울 물크(Ihtisham ul-Mulk), 나시르 우드 다울라, 나와브 아마드 알리 칸 바하두르(Nawab Ahmad Ali Khan Bahadur)와 결혼했습니다. 부부는 다음 해 첫 아이를 낳았으며, 슬하에 세 아들과 두 딸을 두었지만 성인까지 살아남은 자녀는 셋이었습니다.
개혁 군주로서의 통치
1901년 샤 자한 베굼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43세의 딸이 '술탄 자한 베굼'이라는 이름으로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술탄 자한은 즉위 직후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라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습니다. 특히 교육, 그중에서도 여아 교육에 큰 비중을 두어 여러 학교와 기술 연구소 등 교육 기관을 설립했으며, 1918년에는 의무 무상 초등 교육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러한 교육 확충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격을 갖춘 교사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교육 분야를 넘어 술탄 자한 베굼은 국가 기관의 민주화를 추진하고 세금 제도, 군대, 사법 제도를 개혁했습니다. 또한 어머니가 시작한 사업을 이어받아 광범위한 관개 시설을 구축해 농업을 지원하고 다양한 공공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공중 보건 분야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처음으로 대규모 예방 접종 캠페인을 실시하고 위생 기준을 크게 개선했습니다. 어머니처럼 학식 있는 지식인이었던 술탄 자한 역시 교육과 보건 등 관심 분야에 관한 여러 저서를 남겼습니다.
1926년, 68세이자 즉위 25년째 되던 해에 술탄 자한은 다섯 자녀 중 유일하게 생존한 막내 아들 하미둘라 칸(Hamidullah Khan)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퇴위했습니다. 하미둘라 칸은 보팔의 마지막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술탄 자한은 4년 후인 1930년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