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가 아드리엔 그랑피에르-드베르지(Adrienne Grandpierre-Deverzy, 1798~1869)는 역사화와 초상화로 명성을 쌓았으며,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파리 살롱에 작품을 출품한 인물입니다.
살롱 데뷔
아드리엔 마리 루이즈 그랑피에르-드베르지는 1798년 프랑스 부르고뉴-프랑슈콩테 지역의 토네르(Tonnerre)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신고전주의 화가 아벨 드 퓌졸(Abel de Pujol)의 지도 아래 미술을 배웠습니다. 역사화, 신화, 성경을 소재로 한 작품을 남긴 퓌졸은 당시 파리의 미술 아카데미와 국립미술학교가 여성에게 문호를 철저히 닫아두던 시절, 자신의 화실을 여성 학생들에게 개방한 드문 인물이었습니다.
1822년, 아드리엔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벨 드 퓌졸의 화실(L'Atelier d'Abel de Pujol)이라는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이 그림은 화가가 제자들에게 조언하는 장면을 담고 있으며, 현재 파리 마모탕 모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같은 해 이 작품은 프랑스 예술가 협회 전시회, 즉 흔히 '살롱(Salon)'으로 불리는 전시회에 선정되었습니다. 1673년부터 거의 매년 열려온 이 전시회는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이후 미술 아카데미와 프랑스 예술가 협회가 엄선한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여성의 참여도 허용되었지만 소수에 머물렀는데, 그해 475명의 출품자 가운데 여성은 단 67명, 약 14%에 불과했습니다.
인정받은 예술가
다작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화가였던 아드리엔 그랑피에르-드베르지는 1822년부터 1855년까지 꾸준히 살롱에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그녀는 보조 교사로 활동하게 된 아벨 드 퓌졸의 화실을 여러 차례 그렸으며, 역사화와 초상화 분야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퓌졸의 화실을 그린 그녀의 작품 중 하나는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도 전시되었습니다.
1856년, 58세가 된 아드리엔은 자신보다 13세 연상이며 홀아비였던 아벨 드 퓌졸과 결혼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아드리엔 드 퓌졸(Adrienne de Pujol)'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살롱에 출품했습니다. 그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퐁텐블로에서 스웨덴 여왕 크리스티나에게 은혜를 구하는 몰날데스키(Monaldeschi implores the grace of Christine of Sweden at Fontainebleau)는 이탈리아 귀족이 여왕에게 목숨을 구원해 달라고 간청하지만 끝내 거절당하는 순간을 그린 작품으로, 현재 퐁텐블로 성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드리엔 그랑피에르-드베르지는 1869년 3월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대와 동료들에게 재능을 인정받았음에도 그녀는 오랫동안 잊힌 존재가 되었다가, 앤 서덜랜드 해리스(Ann Sutherland Harris)와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이 미국 네 도시에서 개최한 기념비적인 전시회 '여성 예술가 1550~1950(Women Artists, 1550–1950)'을 통해 다시 조명받게 되었습니다. 이 전시회에는 12개국 출신 83명의 여성 예술가가 참여했으며, 아드리엔이 그린 아벨 드 퓌졸의 화실 작품은 전시 도록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