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인상주의를 빛낸 잊혀진 여성 거장, 마리 브라크몽(Marie Bracquemond)

프랑스 화가 마리 브라크몽(Marie Bracquemond, 1840~1916)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메리 카사트(Mary Cassatt)와 더불어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위대한 여성 화가 중 한 명입니다. 남편 펠릭스 브라크몽의 그늘에 오랫동안 가려져 있었지만, 최근 들어 그녀가 마땅히 받아야 할 평가를 조금씩 받기 시작했습니다.

화가의 꿈을 키우다

인상주의를 빛낸 잊혀진 여성 거장, 마리 브라크몽(Marie Bracquemond)마리 앤 캐롤린 키보롱(Marie Anne Caroline Quivoron)은 1840년 12월 1일 브르타뉴 지방 브레스트 근교의 랑됭베(Landunvez)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원이었던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난 직후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 알린 이아생트 마리 파스키우(Aline Hyacinthe Marie Pasquiou)는 에밀 랑글루아(Émile Langlois)와 재혼했습니다. 부부는 두 딸 마리와 루이즈(1849년생)와 함께 브르타뉴, 쥐라, 스위스, 리무쟁 등지를 떠도는 유랑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에탕프에 정착했습니다.

10대 시절 마리는 은퇴한 화가 오귀스트 바소르(Auguste Vassort)에게 그림을 배웠습니다. 바소르는 마을의 젊은 여성들에게 회화 기법을 전수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재능과 끈기를 겸비한 마리는 눈부시게 성장했고, 이미 1857년에는 어머니와 여동생, 스승을 그린 작품을 파리 살롱(Salon de peinture et de sculpture)에 출품하여 입선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를 만나 사제 관계를 맺으며 실력을 갈고닦았습니다. 다만 앵그르의 엄격함은 마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마리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는 여성의 용기와 끈기를 의심했고, 여성에게는 꽃, 과일, 정물화, 초상화, 풍속화 정도만 그릴 수 있다고 여겼다."

결국 마리는 앵그르의 화실을 떠나 독립적으로 작업하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꾸준히 파리 살롱에 출품했으며, 프랑스 미술관 총괄 국장의 의뢰를 받아 루브르 박물관에서 명작들을 모사하는 일도 맡았습니다.

도자기 화가로서의 경력

인상주의를 빛낸 잊혀진 여성 거장, 마리 브라크몽(Marie Bracquemond)루브르에서 모사 작업을 하던 중 마리는 화가 오귀스트 조제프 브라크몽, 즉 펠릭스 브라크몽(Félix Bracquemond)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마리의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869년 결혼했습니다. 이듬해 외아들 피에르가 태어났지만, 출산은 원래 허약했던 마리의 건강을 크게 위협했습니다. 마리와 아들이 남긴 회고록에 따르면 이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펠릭스는 아내의 비판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아내의 작품을 심하게 비평했고, 방문객들에게 아내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부부 사이의 갈등은 잦았습니다.

펠릭스가 리모주 출신 도자기 회사 샤를 아빌랑(Charles Haviland)의 파리 공방 예술 감독이 되자, 마리도 그곳에서 함께 일하며 식기 세트와 대형 토기 패널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1878년에는 파리 만국박람회에 높이 3m, 폭 7m에 달하는 대형 세라믹 타일 패널, 즉 예술의 뮤즈들을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은 화가 에드가 드가의 극찬을 받았고, 1879년 마리는 세라믹 접시와 토기 패널의 준비 소묘를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동료

브라크몽 부부는 알프레드 스티븐스, 클로드 모네, 에드가 드가, 폴 고갱, 에두아르 마네, 알프레드 시슬레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과 폭넓게 교류했습니다. 한동안 앵그르 화실에서 배운 아카데미즘의 영향이 짙게 남아 있었던 마리는 점차 그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특히 알프레드 스티븐스, 클로드 모네, 에드가 드가에게 영감을 받아 색채를 더욱 강렬하게 다루고 명암의 대비와 색조 변화를 연구했으며, 세브르에 있는 자신의 정원에서 야외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1879년, 1880년, 1886년에 열린 인상주의 전시회에 회화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그러나 1890년, 결혼 생활 속 끊임없는 긴장에 지친 마리는 남편의 잦은 비판과 그녀의 작품에 대한 무관심에 깊이 낙담하여 붓을 놓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녀는 몇 점의 개인적인 작품만 남겼지만, 그럼에도 인상주의를 옹호하는 데 힘썼습니다.

마리 브라크몽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인 1916년 1월 17일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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