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자이자 정치가의 길
피에르 코숑(Pierre Cauchon)은 프랑스 최고의 명문인 파리 대학교에서 수학한 위대한 학자이자 정치가였습니다. 그는 문과 석사(Master of Arts), 교회법 면허(Licentiate in Canon Law), 신학 박사(Doctor of Theology) 학위를 차례로 취득하며 뛰어난 학문적 역량을 인정받았습니다.
1409년에는 보베(Beauvais)의 참사회원(canons)으로 선출되었고, 이후 파리 대학교 총장(recteur)을 역임했습니다. 1418년에는 고등법원(Parlement)의 청원 심의관(maître des requêtes)으로 임명되었으며, 콘스탄츠 공의회에서는 부르고뉴파의 영수인 '무서공' 장(Jean sans Peur)의 변호인으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개혁파·갈리칸파·부르고뉴파의 핵심 인물
코숑은 당시 프랑스 정교계에서 개혁파이자 갈리칸주의(Gallicanisme) 성향을 지닌 인물로, 정치적으로는 부르고뉴 진영의 활발한 일원이었습니다. 1420년에는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와 부르고뉴 공작의 추천을 받아 보베 주교로 서임되며 주교직에 올랐습니다.
잔 다르크 재판의 주도자
코숑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잔 다르크(Jeanne d'Arc)의 재판이었습니다. 잔 다르크가 그의 관할 교구에 속한 콩피에뉴(Compiègne) 근처에서 포로로 붙잡히면서, 코숑은 이 재판의 실질적인 기획자이자 주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재판 전 과정을 이끌며 잔 다르크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지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말년
1431년, 즉 잔 다르크가 처형된 해에 코숑은 리지외(Lisieux) 주교로 임명되어 새로운 교구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1442년 세상을 떠났으며, 오늘날까지도 잔 다르크를 화형에 몰아넣은 인물로 강렬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