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슈카 융코바(Eliška Junková, 1900~1994)는 본명 알주베타 포스피실로바(Alžběta Pospíšilová)로 태어난 체코의 레이싱 드라이버로, 그랜드 프릭스(Grand Prix)에서 우승한 역사상 유일한 여성입니다.
몰래 배운 운전 교습
엘리슈카 융코바는 1900년 11월 16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 모라비아 지방에서 대장장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여덟 남매 중 여섯째였던 그녀는 밝은 미소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스미셰크(Smíšek, 웃음꾼)'라는 애칭으로 불렸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살려 은행에 취직했고, 그곳에서 훗날 남편이 되는 빈첸츠 '체네크' 유네크(Vincenc "Ceněk" Junek)를 만나게 됩니다.
여행을 꿈꾸던 엘리슈카는 직업 덕분에 프라하와 프랑스, 나아가 지브롤터까지 누볐고, 파리에서 체네크와 다시 만납니다.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미래의 남편 곁에서 엘리슈카 역시 자동차에 매료되었고, 프라하에서 몰래 운전 교습을 받아 운전면허를 취득했습니다. 한편 1922년 결혼한 체네크는 본격적으로 레이싱 무대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핸들의 여왕'
부부는 메르세데스, 그리고 부가티 타입 30(Bugatti Type 30) 등 레이싱 카를 하나씩 구입했습니다. 전쟁 당시 손을 다쳐 기어 변속이 어려워진 체네크를 대신해 엘리슈카가 점차 핸들을 잡게 되었는데, 이것이 그녀의 레이싱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1923년에는 그랜드 투리즘 부문에서 라호틴-트레모슈나(Lachotin-Tremosna) 경주를 제패하며 이름을 널리 알렸고, 1925년에는 즈브라슬라프-일로비스테(Zbraslav-Jíloviště) 경주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핸들의 여왕'이라 불리며 명성이 높아진 엘리슈카는 유럽 전역의 무대에서 최고의 남성 드라이버들과 정면으로 겨루기 시작했습니다. 영어권에서는 '엘리자베스(Elisabeth)'로 불린 그녀는 꼼꼼하고 성실한 타입의 주자였습니다. 1926년에는 스위스 클라우젠 고개(Col du Klausen) 경주에서 2위에 올랐고, 1927년에는 뉘르부르크링에서 열린 독일 그랜드 프릭스에서 우승을 거두며 그랜드 프릭스를 제패한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이 되었습니다.
레이스의 끝
1928년 뉘르부르크링 독일 그랜드 프릭스에서 엘리슈카는 체네크와 함께 드라이빙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주행이 끝난 얼마 뒤, 체네크가 운전하던 차량이 도로를 이탈하면서 그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깊은 충격에 빠진 엘리슈카는 모터스포츠를 떠나 차량을 모두 처분하고 다시 여행의 삶으로 돌아갔으며,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를 위해 아시아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혼한 엘리슈카는 한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지냈습니다. 그녀는 1994년 1월 5일 프라하에서 93세의 나이로 조용히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