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레비(Suzanne Lévy)는 이후 수잔 뷔송(Suzanne Buisson, 1883~1943)으로 알려졌으며, 프랑스의 정치인이자 레지스탕스 운동가였습니다.
"여성이자 활동가" — 한 페미니스트의 탄생
수잔 레비는 1883년 9월 19일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렵던 그녀의 가족은 곧 디종으로 이주했고, 수잔은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1899년,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부모와 함께 파리로 돌아와 상점 점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임금 노동자로서 불안정한 삶을 직접 겪으면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운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고 각종 집회에 참여했으며, "르 레베유 데 1구·2구(Le Réveil des 1er et IIe arr.)"라는 평민대학에 다니며 스스로를 계몽했습니다. 열렬한 페미니스트였던 그녀는 남녀 간 완전한 평등과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활보했고, 1905년 프랑스 사회당(SFIO)에 입당했습니다.
수잔은 샤를 지보(Charles Gibault)와 결혼해 슬하에 자녀를 두었지만, 남편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고 그녀는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미망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1926년 3월 23일, 프랑스노동총연맹(CG T) 소속 조르주 뷔송(Georges Buisson)과 재혼하면서 '수잔 뷔송'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녀는 사회당 기관지 뽀퓰레르(Populaire)에서 "여성, 활동가(La femme, la militante)" 코너를 담당했고, SFIO 산하 사회주의 여성 전국위원회 서기를 맡았습니다. 또한 당 통제위원회와 상임행정위원회 등 SFIO 내 여러 요직을 거쳤으며, 1931년에는 빈에서 개최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대회에 SFIO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는 등 당의 핵심 인물로 성장했습니다.
레지스탕스 속의 수잔 뷔송
수잔 뷔송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부터 이미 히틀러에 맞서는 반대파의 편에 섰습니다. 그녀는 프랑스 전역을 누비며 비밀 메시지를 전달하고 지하 신문을 배포했으며, 비시 정권이나 독일 점령 당국에 체포된 사회주의 활동가들과 그 가족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습니다.
1941년에는 SFIO의 정신을 이어받은 레지스탕스 조직인 사회주의 행동위원회(CAS)를 공동 창설하고 회계 담당자가 되었습니다. 1943년 3월, CAS는 지하 조직 'SFIO'로 재편되었고, 수잔은 그 정치국 멤버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게슈타포가 SFIO 지도부의 비밀 집결지를 발견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소식을 접한 수잔은 필사적으로 동료들에게 위험을 알렸지만, 정작 본인은 게슈타포에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잔혹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어떤 정보도 넘기지 않았습니다. 레지스탕스 활동가이자 유대인이라는 이중의 이유로 1943년 강제 추방된 그녀는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가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생을 마쳤는지는 오늘날까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레온 블룸이 남긴 추모의 글
1946년 2월 2일자 뽀퓰레르에 실린 글에서 레온 블룸(Léon Blum)은 그녀를 기리며 다음과 같이 헌사를 남겼습니다.
"그녀는 원숙하고 모범적인 활동가였다. 당은 그녀에게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었고, 그녀는 어떤 일도 꺼린 적이 없었다. 나아가 헌신과 희생이라는 진정으로 절대적인 정신으로 어떤 임무든 감당해냈다. […] 당의 평상시 활동에서 그녀는 어떤 책임도 주저하지 않았고, 지하 투쟁의 시기에는 어떤 위험도 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