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앨리스 다이아몬드와 40인의 도둑: 런던 지하 세계를 지배한 여성 갱단의 여왕

여성 갱단 '포티 엘리펀츠(Forty Elephants)'를 이끌었던 앨리스 다이아몬드(Alice Diamond, 1896~1952)는 20세기 초 런던에서 대규모 매장 절도를 주도하며 지하 세계를 지배한 인물입니다.

첫 번째 절도

앨리스 다이아몬드는 1896년 6월 22일, 잉글랜드 런던의 램버스 구제원(Lambeth Hospice)에서 메리 앤 앨리스 블레이크(Mary Ann Alice Blake)와 토머스 다이아몬드(Thomas Diamond) 사이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일곱 자녀 중 맏이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토머스는 최소 세 차례 유죄 판결을 받은 전과자였으며, 그중 하나는 런던 시장의 아들의 머리를 문유리에 밀어 넣어 중상을 입힌 혐의였습니다.

앨리스의 유년기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법원 판결문을 통해서입니다. 그녀의 첫 절도 기록은 적어도 1912년, 즉 만 15~16세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녀는 급우 메리 오스틴(Mary Austin)과 함께 초콜릿을 훔치다가 발각되었고, 이듬해에는 처음으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이후 몇 년간 그녀의 삶은 절도 관련 유죄 판결로 점철되었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동기와 아버지의 영향 외에도, 앨리스는 영화 속 여주인공들이 누리는 우아함과 화려함, 모험과 스릴 넘치는 삶을 동경했습니다. 그녀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경찰과 언론은 이미 그녀를 마리 '폴리' 카(Mary 'Polly' Carr)의 후계자, 즉 '40인의 도둑의 여왕(Queen of the Forty Thieves)'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포티 엘리펀츠(Forty Elephants)

앨리스 다이아몬드는 실제로 여성 소매치기 갱단인 '포티 시브스(Forty Thieves, 40인의 도둑)', 또는 '포티 엘리펀츠(Forty Elephants, 40마리의 코끼리)'에 합류했습니다. 이 이름은 그들이 근거지로 삼았던 런던 남부의 '엘리펀트 앤 캐슬(Elephant and Castle)' 지역에서 유래했습니다.

적어도 1873년부터 존재해 온 이 갱단은 '엘리펀트 앤 캐슬 모브(Elephant and Castle Mob)'와 연합하여 놀라운 수명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역사는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경찰 기록에 따르면 18세기 말부터 여성 소매치기 활동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전원이 여성으로 이루어진 이 갱단은 자체적인 규칙을 갖고 있었으며, 조직원들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했습니다. 남성 갱단들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이들은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과 맞먹는 규모의 남성 집단과도 물리적으로 맞설 수 있다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키가 약 175cm로 당시 남성 평균보다 10cm 정도 큰 앨리스 역시 어깨가 넓고 힘이 센 체구였습니다.

앨리스는 포티 엘리펀츠에 가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알코올 의존증과 폭력적인 성격으로 유명했던 최측근 마기 힐(Maggie Hill), 거트루드 스컬리(Gertrude Scully), 파트리지 자매 등의 지원을 받으며 그녀는 강철 주먹으로 갱단을 통솔했고, 런던 웨스트엔드(West End)는 물론 교외 지역까지 이르는 원정 작전의 탁월한 조직자임을 입증했습니다.

포티 엘리펀츠의 범행 수법

앨리스 다이아몬드와 포티 엘리펀츠는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 있어 놀라운 창의성을 발휘했으며, 다양한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코트, 허리띠, 치마에 숨겨진 주머니를 꿰매 넣었고, 공범들이 직원들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동안 런던 웨스트엔드의 고급 매장들을 털었습니다. 공범들은 직원들과 수다를 떨거나 옷을 입어보는 척하거나, 일부러 서툴게 마네킹을 넘어뜨리는 등의 방법으로 주의를 돌렸습니다. 한 조직원은 허리띠에 무릎까지 닿는 가방을 달고 도둑맞은 물건 45개를 지니다가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기법으로는, 갱단의 한 조직원이 때로 블라우스 안에 가짜 팔을 넣고 물건을 훔치던 진짜 손을 숨기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집단으로 행동할 때는 카운터 주변에 대거 모여 보석이나 화장품을 착용해 보겠다고 요청한 뒤 물건을 서로에게 건네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게 하는 방법도 썼습니다. 또한 보석의 복제품을 만든 후 매장 안에서 슬쩍 바꿔치기하는 수법도 사용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포티 엘리펀츠는 단순한 매장 절도에 만족하지 않고 주거 침입 절도와 공갈협박까지 저질렀습니다. 조직원들은 고용주의 집을 털기 위해 가짜 추천서로 하녀로 취업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기법으로 포티 엘리펀츠는 수천 파운드 상당의 물건을 훔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앨리스는 양손 손가락마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다녔습니다.

파티와 감옥 사이의 삶

포티 엘리펀츠의 뛰어난 수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검거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앨리스, 마기를 비롯한 갱단 멤버들은 여러 차례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형량은 대체로 1년에서 3년 사이로 짧았고 출소 후에도 범행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짧은 형기와 화려한 파티, 사치스러운 삶이 가난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범행 후 갱단 멤버들은 실제로 우아한 드레스—절도품이 아닌—를 차려입고 수입의 일부를 써서 성대한 파티를 열었습니다. 유행하지만 값비싼 모피 코트를 걸치고 다니며 그들은 술, 때로는 코카인까지 자유롭게 오가는 펍, 레스토랑, 클럽을 드나들었습니다.

통치의 끝

1925년, 앨리스와 마기는 포티 엘리펀츠의 규칙을 어긴 조직원에 대한 가차 없는 응징 작전을 감행합니다. 경찰이 개입했고, 앨리스와 마기는 각각 18개월과 21개월의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수감된 동안 새로운 여왕이 등장했습니다. 도둑이자 대담한 운전사였던 릴리언 로즈 켄달(Lilian Rose Kendall)은 자동차로 보석상 쇼윈도를 들이받는 기행을 벌이며 갱단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출소한 앨리스는 과거의 제국을 되찾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수년간 매춘굴을 운영했고, 후배 소매치기 세대의 보호자 역할을 하며 가끔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경찰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치안판사에게 앨리스는 이렇게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경찰은 정부가 자기들 몫을 지키려고, 남들이 한몫 챙기지 못하게 만드는 조직일 뿐이야!"

앨리스 다이아몬드는 1952년 다발성 경화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