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하늘을 정복한 여성 비행사, 마리즈 바스티에

항공계의 개척자이자 스포츠 역사에 빛나는 인물인 마리즈 바스티에(Maryse Bastié, 1898~1952)는 당대 항공 거리와 체류 시간 분야에서 수많은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그녀는 아드리엔 볼랑(Adrienne Bolland), 엘렌 부셰(Hélène Boucher)와 함께 여성 참정권 운동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열정의 시작

본명은 마리 루이스 봉벡(Marie-Louise Bombec)으로, 1898년 2월 27일 프랑스 리모주의 보몽 거리(rue de Beaumont)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거리는 훗날 그녀를 기려 '마리즈 바스티에 거리'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열한 살에 아버지를 잃은 그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일찍이 삶의 고단함을 몸소 겪어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수료증을 취득한 후에는 구두 공장에서 가죽 재봉사로 일하며 가족을 도왔습니다.

첫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아들마저 잃으면서 인생의 무거움을 실감하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마리즈는 전쟁 대부로 지내던 조종사 루이 바스티에(Louis Bastié) 중위와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1922년 두 사람은 결혼했고, 비행사 남편과 함께한 생활 속에서 마리즈는 항공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행 교육을 받은 그녀는 1925년 보르도에서 조종사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면허를 딴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보르도의 페리교 아래를 통과하는 첫 번째 위업을 달성하며 남다른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수많은 기록 경신

1925년 11월, 마리즈 바스티에는 보르도에서 파리까지 6구간에 걸친 첫 장거리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러나 다음 해, 남편 루이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나며 그녀에게 큰 시련이 찾아옵니다. 그럼에도 마리즈는 비행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6개월간 비행 학교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교가 문을 닫은 후에는 체험 비행을 주관하고 공중 광고 비행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자신만의 비행기 카드론 C.109(Caudron C.109)를 구입한 그녀는 각종 경기에 출전해 프랑스 및 국제 신기록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1929년에는 26시간 44분간의 비행으로 여성 최장 비행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이 기록이 레나 베른슈타인(Léna Bernstein)에게 넘어가자, 그녀는 기록을 되찾기 위해 다시 도전에 나섰습니다. 1930년 9월, 극한의 피로와 수면 부족을 이겨내며 무려 37시간 55분을 비행하며 기록을 탈환했습니다. 이듬해에는 프랑스에서 러시아까지 3,000킬로미터를 비행하며 거리 기록까지 깼고, 이 공로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기사급)를 받았습니다.

마리즈 바스티에 항공학교

마리즈 바스티에는 엘렌 부셰, 아드리엔 볼랑 등 선구적인 여성 비행사들과 함께 여성 참정권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1935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건 항공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1936년에는 세네갈 다카르에서 브라질 나탈까지 15시간 5분 만에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녀는 적십자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고, 이 활동을 통해 점령군에 관한 정보를 모으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러던 중 독일 군인에게 밀치는 바람에 팔꿈치가 골절되었고, 상처는 완전히 낫지 못해 더 이상 비행기를 조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마리즈는 비행 시험 센터 홍보 부서에 취업했습니다. 1952년 7월 6일, 승객으로 탑승한 비행기의 추락 사고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늘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삶은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