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소련을 대표한 사실주의 영화감독, 디나라 아사노바

키르기스 출신의 소련 감독 디나라 쿨다셰브나 아사노바(Dinara Kuldashevna Assanova, 1942~1985)는 청소년기와 성장기를 다룬 작품들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딱따구리는 두통이 없다와 파차니(말썽꾸러기들)는 그녀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영화를 꿈꾸던 소녀

소련을 대표한 사실주의 영화감독, 디나라 아사노바

디나라 쿨다셰브나 아사노바(Динара Кулдашевна Асанова)는 1942년 10월 24일, 당시 소련에 속해 있던 키르기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현 키르기스스탄)의 프룬제(오늘날 비슈케크)에서 태어났다. 클라라라는 자매가 한 명 있었다. 1959년 학교를 마칠 무렵 부모는 그녀가 교사의 길을 걷기를 바랐지만, 디나라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바로 영화였다.

열일곱 살이었던 그녀는 키르기스필름, 당시 명칭으로는 '프룬제 뉴스·기록영화 스튜디오'에 입사하며 일찍이 영화 인생을 시작했다. 소품 담당, 편집자, 배우 등 여러 역할을 거친 뒤, 알기만타스 비두기리스 감독의 티엔샨의 소녀(1960)에서 조감독으로 일했고, 이어 소련의 유명 감독 라리사 셰피트코의 장편 이열(炙熱) 제작도 도왔다.

졸업작품 「루돌피오」

이러한 현장 경험을 발판 삼아 디나라는 모스크바에 있는 S. A. 게라시모프 전연방 국립 영화대학(VGIK)에 입학하게 된다. 1919년 설립된 이 학교는 스크린 예술을 전문으로 하는 소련 최고의 영화 교육 기관이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특별히 입학하게 된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녀는 학창 시절 내내 조용하고 겸손한 자세로 지냈다. 당시 VGIK에는 미하일 롬, 알렉산드르 스톨퍼 등 저명한 소련 영화인들이 함께하며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었다.

졸업 작품으로 디나라는 1969년 단편 루돌피오를 연출했다. 러시아 작가 발렌틴 라스푸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나이 많은 기혼남에게 마음을 빼앗긴 한 십대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성(性)과 사춘기, 동의 연령 같은 문제를 다루면서 이 첫 단편은 이미 당대의 정치적 올바름의 틀을 벗어나 있었다. 검열 과정에서 일부 장면이 삭제되기도 했다. 같은 해 졸업한 뒤 디나라는 5년간의 고난의 시기를 보낸다. 그녀가 내놓는 영화 기획은 국가영화위원회에 의해 번번이 거부되었다.

1971년 디나라는 화가 니콜라이 블라디미로비치 유딘과 결혼했고, 같은 해 아들 블라디미르를 낳았다. 블라디미르는 어머니의 촬영 현장을 자주 따라다녔으며, 어머니의 여러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파차니」와 렌필름 시절

디나라 아사노바의 긴 침묵은 1974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렌필름 스튜디오에 합류하면서 끝이 났다. 이듬해 그녀는 첫 장편 딱따구리는 두통이 없다를 선보였고, 이 영화는 관객들의 호응을 얻으며 소련 영화계에서 그녀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여름방학 중 한 소녀에게 첫사랑의 마음을 느끼게 된 음악을 꿈꾸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이후 그녀 작품의 상징이 될 주제들을 이미 보여준다. 사춘기, 젊음의 고민, 첫사랑의 설렘과 혼란, 그리고 어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그것이다.

디나라는 1985년까지 렌필름에서 여덟 편의 영화를 더 만들었다. 일상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때로는 소련 사회를 은근히 비판하는 작품들이었다. 가장 주목받은 작품 중 하나인 1983년의 파차니는 한 대학생이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비행 소년들과 우정을 쌓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녀의 작품 중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둔 이 장편은 그녀에게 소련 국가상을 안겨주었다.

1985년 4월, 디나라 아사노바는 영화 알 수 없는 여인 촬영을 위해 머물고 있던 무르만스크의 호텔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향년 42세. 심장마비로 추정되지만, 탁자 위에서 작별 편지로 보이는 쪽지가 발견되어 사후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녀의 생애와 작품을 다룬 다큐멘터리 세 편이 제작되었으며, 2018년에는 그녀의 유작 나의 사랑스럽고 소중한 유일한 그대(1984)가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선에 상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