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전 세계의 푸네트가 불타는 곳이면 어디든, 자이호! - 바이런 싱 세크하왓을 추억하며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바이런 싱 세크하왓(Shri Bhairon Singh Shekhawat)이라는 이름을 아버지 입에서 들은 건 1977년 여름이었다. 폭염이 대기를 뒤흔들던 그때, 집안의 정치 담론도 뜨거웠다. 열다섯 살 소년이던 나는 아버지가 퇴근 후 "내일 바이런 싱 세크하왓이 라자스탄 주총리로 취임한다"고 말씀하시자 호기심에 물었다. "그분은 어떤 분이세요?" 아버지는 웃으며 답하셨다. "기백이 넘치는 분이다. 라자스탄은 용감한 주총리를 얻어 행운이다." 그날 아버지는 세크하왓의 고난과 투쟁의 삶에 대해서도 들려주셨다.

주정부 공무원으로서 첫 만남, 1992년

세크하왓을 가까이서 볼 기회는 1992년, 내가 라자스탄 주정부 공보국(Department of Information and Public Relations)에 발령받으며 찾아왔다. 당시 세크하왓의 두 번째 내각이 집권 중이었다. 나는 1992년 12월 16일을 발령일로 잡았는데, 공교롭게도 내 발령 하루 전날 세크하왓 내각이 해임되었다.

비밀ariat(주정부 청사) 내 공보국 사무실에서 발령 신고를 하던 날, 청사 전체에 기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호원들의 호루라기 소리와 사이렌 소리가 복도를 울렸고, 대통령 통치가 선포되어 마하슈트라 주지사 Dr. M. 첸나레디가 방문 예정이라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복도나 도로에서 사람이 보이면 경호원들이 호루라기로 쫓아낼 정도였다.

저녁이 되자 장관실에서 서류들이 반출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지의 주민들이 품은 염원과 꿈, 절박함이 적힌 서류들이었다. 아직 행정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서류들이었지만, 정부가 바뀌자 무용지물이 되었다. 새로운 정부 앞에 다시금 민의를 담은 서류들이 작성되어야 했다.

그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정부를 이끄는 주총리란 한 개인이 아니라, 수천만 국민의 염원과 꿈의 구심점이라는 것을. 사방에서 문제가 몰려들고, 수천 명이 직접 연결되며, 수백만 손이 서류를 내밀고, 수억 눈이 희망을 건다. 그의 사적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잘로르에서 마주한 소탈한 지도자

가슴이 아팠다. 새 직장에서 세크하왓을 가까이서 보고, 어쩌면 함께 일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대통령 통치라니. 나는 잘로르(Jalore) 군으로 전보되었고, 정확히 1년 뒤인 1993년 12월 4일 세크하왓이 세 번째로 주총리에 취임했다. 다시 희망이 피어올랐다.

1994년, 잘로르 군을 방문한 세크하왓을 처음으로 내 눈으로 보았다. 군 공보관으로서 수행 취재를 맡았는데, 첫인상은 아버지가 1977년에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참 소박하고 평범하신 분이구나."

1997년 6월까지 잘로르에 근무하며 세크하왓의 여러 방문을 취재했다. 그의 화법에 깊이 매료되었다. 어려운 단어 없이, 짧은 문장과 쉬운 말, 특유의 위트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연설문을 보도자료로 정리하는 데 단 한 번도 어려움이 없었다.

1996년 총선 유세 길에서 본 '민심의 지도자'

1996년 제11대 록사바(Lok Sabha) 총선 공시 전, 세크하왓은 아호르(Ahor)에서 잘로르, 바그라(Bagra), 비말(Bhinmal), 산초레(Sanchore)까지 도로를 이용해 유세했다. 나는 수행단에 합류해 취재했다. 그날 본 광경은 초보 공무원이던 나를 경악케 했다.

어떤 의전도, 요란함도 없었다. 길 양편엔 수백 명의 군중이 서 있었고, 세크하왓은 차를 세우고 악수하며 화환을 목에 걸었다. 마르와리어와 세크하와티 방언으로, 상대의 이름을 부르며 대화했다. 얼마나 많은 이름을 기억하시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구트카(씹는 담배)를 권하는 이에게서 받아 나눠 드시고, 소와 물소, 농사 형편을 물으시며 아들의 이름까지 불러 취직 여부와 처가 살림까지 챙기셨다. 옛 인연까지 줄줄이 꿰고 계셨다.

그때 알았다. 주총리 주변엔 서류 든 손만 있는 게 아니라, 마을마다 그를 친구로, 팬으로, 축복하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문해 운동과 마이크 고장 해프닝

1997년 잘로르에서 문해 운동(Literacy Mission)이 시작되었다. 세크하왓은 이 사업을 각별히 챙기셨다. 사업 계획 수립부터 델리 국가문해임무(National Literacy Mission) 프레젠테이션까지 내가 팀에 속해 있었다. 승인되자 주총리께서 직접 잘로르에서 출범식에 참석하셨다. 라제슈와르 싱(Rajeshwar Singh) 군수가 성대하게 준비했고, 이미 전보된 나를 군수가 사회자로 불렀다.

내 인생 첫이자 마지막 주총리 행사 사회였다. 행사는 순조로웠으나, 주총리 연설 4-5분 만에 마이크가 꺼졌다. 전기는 들어오는데 마이크만 안 된다. 3-4분을 허비하다 내 마이크가 작동함을 알고, 나는 결단했다. 주총리 연설 중간에 끼어드는 건 결례지만, 상황을 봐서 문해 운동의 향후 계획을 13-14분간 설명했다. 군수가 두세 번 눈빛을 보냈으나 제지하지 않았다.

마이크가 복구되자 주총리가 첫마디를 하셨다. "초, 기백 있게 잘 말했네." (Choro ghano vigorous bolai) 나는 안도했다. 내 결례를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칭찬으로 받아주셨다.

나가우르에서의 만남, 그리고 부통령 시절

1998년 주 의회 선거 전, 나가우르(Nagaur) 군으로 전보된 나는 다시 세크하왓의 방문을 취재했다. 1998년 10월 1일, 1박 2일 일정으로 오신 주총리는 저녁에 나가우르에서 차투르마스(Chaturmas) 수행 중인 자이나교 스님(Jain monk)을 예방하셨다. 그 방엔 주총리, 스님, 나 단 셋뿐이었다. 1시간 동안 나눈 대화를 들으며 새삼 느꼈다. 주총리는 수억 국민의 지도자이기에 앞서, 자기 영혼과 내세(來世)를 걱정하는 한 인간이라는 것을.

이튿날 오전 7시, 간디 초크(Gandhi Chowk)에서 마하트마 간디 동상에 헌화하셨다. 새벽인데도 광장은 인산인해였다. 이번에도 누군가의 구트카를 받아 드시고,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8시쯤 떠났다.

2007년, 부통령으로서의 시카르푸라 방문

2007년 부통령 자격으로 마한트 키슈나람지 마하라즈(Mahant Kishnaramji Maharaj) 주년 행사에 라자람 아쉬람 시카르푸라(Rajaram Ashram Shikarpura)에 오셨다. 당시 나는 조드푸르 디스콤(Jodhpur Discom) 홍보관이었으나 취재 지원을 나갔다. 아쉬람은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가득 찼다.

오전 10시 30분경 부통령께서 본당 참배를 위해 이동하실 때, 목봉 울타리와 경찰이 경호선을 쳤으나 군중이 자발적으로 몰려들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장관이었다. 구자라트 주총리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가 들어서면서 그 열기가 잠시 잦아들었다.

마지막 취재, 그리고 영면

2007년 바르메르(Barmer) 군 나가나 사원(Nagana temple) 방문이 내가 취재한 마지막 일정이었다. 부통령 신분이셨으나 정치권의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뱀도 죽이고 몽둥이도 안 부러뜨리는" 화법으로 뼈 있는 말씀을 하셨다. 연단에서 군중 속 특정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옛 인연을 꺼내시자, 모두가 "내게 직접 말씀하신 것 같다"며 감동하고 흡족해했다.

아마 마지막 뵌 건 자이푸르 고빈드데브지(Govinddevji) 사원에서였다. 어떤 요란함도 없이, 오직 사랑만으로 오셨다.

2010년 5월 15일, 서거 소식이 전해졌다. 다음 날 신문엔 대대적인 보도가 실렸다. 아버지가 신문을 보며 "바이런 싱지께 추모를 표해야겠다"고 하셨다. 당시 나는 일간지 <나브조티(Navjyoti)>에 '제3의 눈(Third Eye)' 칼럼을 연재 중이었는데, 5월 18일자 "그 소박함과 순수함, 세상 어디로 갔나"라는 글로 추모의 뜻을 전했다. 글말고 내가 더 드릴 수 있는 게 무엇이었겠는가.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국민시인 람다리 싱 딩카르(Ramdhari Singh Dinkar)의 시구처럼 — "전 세계의 푸네트(Puneet, 순수한 불꽃)가 타는 곳이면 어디든, 자이호(Jai Ho)!" 그는 바로 그 푸네트 아날(Puneet Anal)이었다.


— Dr. Mohanlal Gupta
63, Sardar Club Scheme,
Air Force Area, Jodhp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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