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92. 사르다르 파텔, 보팔 나와브를 무릎 꿇리다!

92. 사르다르 파텔, 보팔 나와브를 무릎 꿇리다!

보팔 번왕국과 나와브 하미둘라 칸

보팔 번왕국은 1723년 무굴 황제 아우랑제브 군대 소속의 아프간 출신 장교 도스트 모하마드 칸이 세운 나라입니다. 인도가 독립을 맞던 시기 보팔의 통치자는 하미둘라 칸으로, 그는 1926년 보팔 번왕국의 나와브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1931년과 1944년 두 차례에 걸쳐 번왕들의 모임인 나렌드라 만달(번왕 회의)의 총재로 선출될 만큼 인도 내 번왕들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독립 당시에도 총재직을 맡고 있으면서도 그는 어떤 경우에도 인도에 합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진나와 손잡고 분열을 부추기다

하미둘라 칸은 파키스탄의 지도자 진나와 함께 인도 내 대다수 번왕국들이 파키스탄에 편입하거나 독립을 선언하도록 부추겼습니다. 이에 분노한 여러 왕들은 나렌드라 만달 참여를 거부했고, 결국 보팔 나와브는 총재직에서 물러나야 했으며 나렌드라 만달은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진나는 하미둘라 칸에게 파키스탄으로 건너와 사무총장 자리를 맡아줄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딸의 거절과 '독립' 선언

1947년 8월 13일, 하미둘라 칸은 자신이 파키스탄으로 떠날 수 있도록 딸 아비다에게 보팔 번왕국의 통치자 자리를 물려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비다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를 거부했습니다. 1948년 3월, 하미둘라 칸은 보팔의 독립을 공식 선언했고, 같은 해 5월에는 차투르 나라얀 말비야를 수상으로 하는 보팔 정부 내각을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사르다르 파텔과 V.P. 메논은 끊임없이 하미둘라 칸에게 인도 편입을 선언하라고 압박했습니다. 수상 차투르 나라얀 말비야 역시 번왕국의 인도 합병에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보팔 주민들 또한 프라자 만달 운동을 전개하며 합병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격화하는 갈등과 시위

1948년 10월, 나와브는 하즈 순례를 떠났습니다. 같은 해 12월, 보팔에서는 합병 문제를 둘러싼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타쿠르 랄 싱, 샹카르 다얄 샤르마, 바이론 프라사드, 우드하브 다스 등 지도자들이 보팔 정부에 의해 체포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1949년 1월 23일, V.P. 메논은 다시 보팔을 방문해 번왕국 관료들에게 "보팔은 독립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1949년 1월 29일, 나와브는 내각을 해산하고 모든 권력을 직접 쥐었습니다. 이에 맞서 수상 차투르 나라얀 말비야는 21일간의 단식 투쟁에 나섰습니다. 한편 파텔의 지시를 받은 V.P. 메논은 보팔의 랄 코티에 머물며 번왕국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무릎 꿇은 나와브

1949년 4월 30일, 하미둘라 칸은 마침내 보팔 번왕국의 인도 편입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사르다르 파텔은 나와브에게 서신을 보내 "국가가 당신의 논쟁적 재능과 능력을 필요로 하는 시점에, 당신이 그것을 나라를 위해 쓰게 하지 않은 것은 나에게 크나큰 실망과 슬픔"이라고 질타했습니다.

보팔 번왕국은 1949년 6월 1일 인도의 일부가 되었으며, 중앙 정부가 임명한 최고판무관 N.B. 바네르지가 업무를 인수했습니다. 나와브에게는 연간 110만 루피의 연금(프라이버시 퍼스)이 지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