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텔의 호소: 1947년 8월 15일까지 인도 연방 가입을
1947년 7월 5일 번왕국 담당 부서가 출범하자마자 사르다르 발라브바이 파텔은 각 번왕국의 군주들에게 1947년 8월 15일 이전에 인도 연방에 가입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번왕국들이 인도 연방에 이양해야 할 사안은 공공의 이익과 직결되는 단 세 가지, 즉 국방·외교·교통통신뿐이었으며, 이는 이미 내각 사절단 계획(Cabinet Mission Plan) 당시 군주들 스스로 승인했던 바였습니다. 인도 연방은 이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인도 연방은 번왕국의 내정에 간섭할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번왕국 담당 부서가 각 번왕국을 상대하는 정책 역시 권위에 의한 강압적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국민회의당은 결코 군주들에게 반대한 적이 없으며, 번왕국의 군주들 역시 언제나 애국심과 공공복리에 대한 신념을 표명해 왔습니다.
군주들에 대한 경고: 진정한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동시에 파텔은 군주들에게 명확한 경고도 던졌습니다. 영국의 종주권(paramountcy)이 종료된 후 자동으로 군주들에게 이양될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군주 자신의 착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주권의 실질적 근거는 오직 국민에게 있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셈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 선언은 군주들에게 '공존'을 기반으로 인도에 가입할 것을 초대하는 장이었습니다. 사르다르 파텔의 입장에서 이 제안은 과거 번왕국들이 영국 정부와 맺었던 종속적 조약들보다 훨씬 우월한 조건이었습니다.
첫 번째 수: 파텔과 메논의 포석
이렇게 하여 파텔과 V.P. 메논은 번왕국의 군주들을 포석에 몰아 넣어 인도 연방으로 통합하기 위한 첫 번째 수를 두었습니다. 비카네르의 군주 사두르 싱(Sadul Singh)은 사르다르 파텔의 이 선언을 즉시 환영하며, 형제 군주들에게도 이렇게 내밀어진 우정의 손을 잡고 인도 정부에 전폭적인 지원을 보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래야 인도가 목표를 신속히 달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다수 군주들은 파텔의 제안보다는 코필드(Corfield)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가입 문서와 합의서: 두 가지 가입 절차
번왕국 담당 부서는 번왕국이 인도 또는 파키스탄에 가입하기 위해 두 가지 형식의 서류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경우에 따라 '가입 문서(Instrument of Accession)'와 '합의서(협정문)'로 구분된 것입니다. 가입 문서는 일종의 화합 문서로, 이를 통해 어떤 군주든 인도 연방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가입 문서는 특히 통치자가 완전한 주권적 권리를 보유한 대형 번왕국을 위한 것이었으며, 해당 번왕국의 수는 140개에 달했습니다. 한편 구자라트의 카티아와르 지역에는 300개의 소규모 번왕국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자기르(Jagir)'라 불렸습니다.
자기르와 티카다르·탈루크다르의 요구
이 자기르 중 일부는 1943년 병합 계획에 따라 인근 대형 번왕국에 편입된 바 있었지만, 종주권이 종료되면서 그 병합 계획 역시 폐지될 운명에 놓였습니다. 이에 따라 자기르의 티카다르(thikadar)와 탈루크다르(talukdar)들은 1943년 당시의 지위로 회복되어, 기존 정무부가 해오던 방식대로 인도 정부의 보호와 관리를 받아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중간 지위의 번왕국을 위한 별도 절차
이러한 기반과 탈루크를 위해 별도의 가입 서류가 마련되었습니다. 카티아와르, 중앙 인도, 시믈라 구릉지대에는 70개가 넘는 번왕국이 있었는데, 이들의 지위는 티카다르나 탈루크다르보다는 높았지만 완전한 통치자의 지위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런 번왕국들을 위해 역시 별도의 가입 문서가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사르다르 파텔의 목표는 하나였습니다. 지위와 규모를 막론하고 흩어져 있는 이 왕들의 무리를 모두 인도 연방이라는 큰 틀 안으로 데려오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