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사르다르 파텔의 결단: 내무부를 무슬림 연맹에 절대 넘기지 않다

사르다르 파텔의 결단: 내무부를 무슬림 연맹에 절대 넘기지 않다

임시정부 출범과 사르다르 파텔의 내무장관 임명

1946년 8월 12일, 인도 총독(바이서로이)은 인도 국민회의 총재 자와할랄 네루에게 임시정부 수립을 요청했고, 네루는 이를 받아들여 임시정부를 출범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르다르 파텔이 내무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네루는 국민회의 총재직에서 물러나 아차리야 크리플라니를 새 총재로 선임했으며, 무함마드 알리 지나를 직접 찾아가 임시정부 참여를 설득하고 초청했습니다.

지나의 계략: 내무부를 노리다

지나는 국민회의가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지만, 이미 정부가 출범한 이상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지나는 파텔의 내무부를 빼앗기 위한 술수를 꾸몄습니다. 그는 네루에게 "무슬림 연맹이 내무장관 자리를 맡게 해준다면 임시정부에 참여하겠다"고 제안한 것입니다.

파텔의 강력한 반대

이 소식을 접한 파텔은 지나의 제안에 강경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는 거리에서 수천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며 피의 화례(Holi)를 벌인 무슬림 연맹에게 내무부를 넘겨 나라의 치안과 법질서를 그들의 손에 맡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파텔의 확고한 반대에 부딪히자 네루는 지나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이에 지나는 총독에게 직접 연락해 정부 참여 의사를 밝혔고, 내무부 없이 재무부를 포함한 다섯 개의 핵심 부처를 손에 넣었습니다.

재무부를 장악한 뒤 시작된 정부 마비 공작

재무부를 잡자마자 지나는 인도 정부를 마비시키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내각에 들어간 무슬림 연맹 의원들은 정부 업무의 모든 단계에서 방해 공작을 벌였습니다. 그들은 정부의 일원이면서도 정부에 적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일관되게 보였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정부의 모든 움직임을 무산시킬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리아카트 알리 칸이 제출한 첫 예산은 국민회의에 또 하나의 커다란 좌절로 다가왔습니다.

리아카트 알리 칸의 예산이 던진 충격

국민회의의 공식 정책은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자본주의 사회를 사회주의적 방법으로 개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와할랄 네루 역시 전쟁 기간 동안 상인과 기업가들이 남긴 막대한 이윤 문제를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었고, 이 수익의 상당 부분이 소득세를 회피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공개된 비밀이었습니다.

인도 정부가 소득세 징수를 위해 강경한 조치를 취해야 할 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리아카트 알리 칸이 제출한 예산에는 산업과 무역에 감당하기 어려운 중과세가 부과되어 기업가와 상인들이 전율했습니다. 이는 국민회의뿐 아니라 나라의 상공업 전반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역사가 증명한 파텔의 통찰

만약 사르다르 파텔이 이처럼 위험한 의도를 품은 무슬림 연맹에게 내무부를 넘겼더라면 인도가 어떤 처지에 놓였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파텔의 단호한 판단은 혼란기의 인도가 치안과 행정의 주도권을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