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15. 사와이 자이 싱의 마지막 날 – 자이푸르를 세운 위대한 왕의 영광과 몰락

15. 사와이 자이 싱의 마지막 날 – 자이푸르를 세운 위대한 왕의 영광과 몰락

사와이 자이 싱은 1688년 11월 3일 태어났다. 그는 인도 북부와 중부의 전장에서 일평생을 보냈으며, 아우랑제브에서 바하두르 샤, 파루크시야르, 무함마드 샤에 이르기까지 여러 황제들 밑에서 정치를 펼쳤다. 무굴·아프간·마라타·자트 등 강대 세력이 얽힌 정치판 속에서 살아남아 무려 45년간 정치 무대에 머무른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인내심으로 버텼고, 차마 삼키기 힘든 모욕조차 담담히 견뎌냈다.

그는 학식이 깊은 군주로서 예술·문화·과학·영성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남겼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사와이 자이 싱처럼 용맹하고 외교 감각이 뛰어난 왕의 말년은 행복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술에 대한 집착이 깊어져 폭음을 일삼았고, 나아가 색욕에 빠져 강정제까지 복용했다. 그 결과 혈액 질환에 시달리다 1743년 9월 21일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는 55세가 되기 조금 전이었다. 그의 유해는 자이푸르 인근 가토르(Gaitor)에서 화장되었다.

18세기를 대표하는 왕

사와이 자이 싱은 18세기 인도 북부를 대표하는 위대한 라자푸트 왕이었다. 그는 무굴 제국의 최고 사령관이자 가장 유능한 신하였으며, 그 능력을 인정받아 모든 라자푸트 왕들의 맹주가 되었다. 또한 뛰어난 외교술을 바탕으로 무굴 궁정 안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확보했다.

그는 왕국을 넓히고 체계적으로 정비했으며, 코다드와 세카와티 지역에 정치적 통합을 이루어냈다. 확장된 왕국에는 새로운 수도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1727년 계획도시 '자이푸르'의 건설에 착수했다. 당대 최고 수준의 도시 설계가 반영된 이 아름다운 도시는 곧 인도 문학과 힌두 문화의 위대한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특히 그는 천문학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마투라, 바라나시, 우자인, 자이푸르에 천문대(얀트라 만타르)를 세워 과학 연구와 관측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그의 인격은 그 시대가 지닌 선과 악의 모든 면모, 그리고 당대 왕가들의 장점과 단점이 기묘하게 뒤섞인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그의 시대를 대표하는 왕이라 할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