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브와디스와프 헤르만(1043~1102): 폴란드 피아스트 왕조의 공작

브와디스와프 헤르만(1043~1102): 폴란드 피아스트 왕조의 공작

알렉산데르 레셀이 그린 그림 속 브와디스와프 헤르만

브와디스와프 헤르만

브와디스와프 헤르만(Władysław Herman)은 피아스트 왕조 출신의 폴란드 공작이다. 그는 복위왕 카지미에시 1세(카지미에시 오드로비엘츠)와 키예프 루스 공주 출신인 마리아 도브로니에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1080년경, 형인 대담공 볼레스와프 2세(볼레스와프 시미아우디)가 귀족들의 반발로 왕위에서 쫓겨나 헝가리로 망명한 뒤 불분명한 정황 속에서 사맍하자, 브와디스와프 헤르만이 그 뒤를 이어 폴란드의 통치자가 되었다.

권력 장악과 배후 세력

브와디스와프 헤르만은 국왕 축출을 주도했던 반대파 귀족들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일부 학자들은 그가 전임 국왕을 타도하려던 음모에 스스로 가담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첫째 즈비그니에프는 알려지지 않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태어났고, 둘째 볼레스와프 3세 크시보우스티는 루스 공주 즈비스와바 사이에서 얻은 자식이었다.

그의 곁에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 배우자가 있었다. 바로 헝가리 왕비 출신으로 야심이 강한 유디타 마리아 잘리카였다. 역사학자들은 공작이 그녀에게 국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궁정 최고 관료인 팔라틴(궁내백) 시에치흐에게 권력의 상당 부분을 위임했다. 시에치흐는 브와디스와프 헤르만의 이름으로 무장 원정을 지휘하고 핵심적인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

국가 분할과 통치 평가

아들들이 반기를 들자, 브와디스와프 헤르만은 국가를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는 데 동의했고, 자신은 마조비아 지역과 나머지 지역에 대한 명목상의 권위만을 남겨두었다.

그는 흔히 우유부단하고 무능한 통치자로 평가되지만,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비판이 과장되었으며 충분히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본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그가 형의 왕 칭호를 계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공작에 머물렀으며, 프셰미스와프 2세에 이르기까지 이후의 모든 폴란드 통치자들 역시 왕이 아닌 공작의 지위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