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카스 크라나흐 작업실에서 제작한 지기스문트 2세 아우구스투스의 초상화
생전 국왕 선거로 즉위한 유일한 왕
지기스문트 2세 아우구스투스(Zygmunt II August)는 야기에워 왕조 출신으로 폴란드 국왕 겸 리투아니아 대공을 지낸 인물이다. 이탈리아 출신 보나 스포르차(Bona Sforza)와 지기스문트 1세 스타리(Zygmunt I Stary)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어머니 보나의 치밀한 계획 덕분에 그는 폴란드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생전 국왕 선거(vivente rege)' 방식으로 선출된 왕이 되었다. 즉, 아버지가 생존해 있는 동안 왕위 계승자로 확정된 것이다. 이 선거는 1529년에 이루어졌고, 대관식은 다음 해 거행되었다. 지기스문트 아우구스투스는 외아들이자 폴란드 왕위의 유일한 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부모 특히 어머니는 그에게 정치적 소양과 군사적 역량을 쌓을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았다. 귀족 엘리트들은 그를 "여인들과, 여인들보다 더 무섭다는 이탈리아인들" 속에서 자란 왕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바르바라 라지비우와의 스캔들
1543년, 지기스문트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엘주비에타(Elżbieta)와 정략결혼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리투아니아로 떠났고, 그곳에서 현지 귀족 바르바라 라지비우우나(Barbara Radziwiłłówna)와 밀회를 시작했다. 아내가 요절하자 그는 연인과 몰래 결혼식을 올렸다. 리투아니아 여성과의 이 관계는 거대한 스캔들을 일으켰고, 젊은 군주와 어머니 보나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낳았다.
루블린 연합과 영토 재편
시기스문트 아우구스투스는 1548년 두 나라의 전권을 장악했다. 그의 추진 덕분에 1569년 루블린 연합(Union of Lublin)이 체결되어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관계가 한층 공고해졌다. 또한 그는 기존에 리투아니아에 속해 있던 광대한 영토, 즉 포들라시에(Podlasie), 볼히니아(Volhynia), 우크라이나를 폴란드 왕령에 편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전쟁을 특별히 기피하는 군주로 알려졌으며, 당대 다른 통치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종교적·문화적 관용이 넓은 인물이었다. 수집은 그의 가장 큰 열정이었는데, 정교한 갑옷과 화려하게 장식된 대포 등을 모으는 것을 즐겼다.
말년과 야기에워 왕조의 종언
말년의 그는 여러 논란에 휘말렸는데, 특히 권세를 누리던 므니셰흐(Mniszech) 가문이 그 곁에 끌어다 놓은 바르바라 기잔카(Barbara Giżanka)와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그는 1572년 자녀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죽음과 함께 야기에워 왕조도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