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지그문트 3세 바사(1566~1632): 폴란드 바사 왕조의 첫 번째 국왕

지그문트 3세 바사(1566~1632): 폴란드 바사 왕조의 첫 번째 국왕

시몬 보구쇼비치(Szymon Boguszowicz)가 그린 지그문트 3세 바사의 초상화.

바사 왕조 출신의 선출 군주

지그문트 3세 바사(Zygmunt III Waza)는 바사(Vasa) 왕조 출신으로 선출된 폴란드의 국왕이다. 그는 스웨덴 국왕 얀 3세 바사(Jan III Vasa)와 그에게 시집온 폴란드 공주 카타지나 야기에우워카(Katarzyna Jagiellonka)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스테판 바토리(Stefan Batory)가 사망한 직후인 1587년 폴란드의 군주로 선출되었다.

왕위 계승의 정당성과 합스부르크와의 관계

그의 출신 배경은 왕위 후보 자격을 든든히 뒷받침해 주었다. 그는 지그문트 1세(지그문트 스타리)와 보나 스 포르차의 손자이자, 야기에우워 왕조의 마지막 군주였던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의 조카였다. 그의 입후보는 선대 왕비이자 미망인인 안나 야기에우워카(Anna Jagiellonka)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다. 중복 선거를 둘러싸고 합스부르크 가문과 전쟁까지 벌였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남쪽 이웃과의 긴밀한 협력을 지향하는 인물이었다. 실제로 오스트리아 공주 자매인 안나와 그 여동생 콘스탄차를 차례로 아내로 맞이했다. 1592년에는 스웨덴 왕위까지 물려받았으나, 1599년에 이를 상실하고 말았다.

군사적 성과와 외교적 실패

그의 스웨덴 왕위 집착 덕분에, 혹은 탓에 폴란드는 스칸디나비아 왕국과의 30년에 달하는 전쟁에 휘말렸고, 이 분쟁은 결국 폴란드에 불리한 평화 조약으로 마무리되었다. 또한 고집과 강한 권력욕 탓에 아들 브와디스와프(Władysław)를 모스크바 차르의 자리에 앉히려던 계획마저 무산시키고 말았다.
반면 그의 통치 기간에는 눈부신 군사적 성과도 있었다. 클루슈인(Kłuszyn, 1610년), 호친(Khotyn, 1621년), 스몰렌스크(Smolensk, 1611년)에서 거둔 승리가 대표적이며, 1610년부터 1612년까지는 모스크바를 일시적으로 점령하기도 했다. 1596년에는 국가의 수도를 크라쿠프에서 바르샤바로 옮기며 폴란드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연금술에 대한 열정과 말년

지그문트 3세 바사는 연금술에 대한 남다른 애착으로도 유명했는데, 이러한 취미가 심지어 바벨(Wawel) 성의 대화재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은 평소 병약한 군주였으며, 말년에는 크게 쇠약해져 통풍과 담즙 관련 질환을 앓았다. 두 번째 아내 콘스탄차가 세상을 떠난 직후, 뇌출혈로 추정되는 원인으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