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바지가 아들 삼부하지와 마지막으로 만난 지 어언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변화된 아들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 그의 속마음을 들어보기 위해 시바지는 판할라 요새로 향했다. 삼부하지는 눈물을 글썽하며 아버지의 발 앞에 엎드려 지금까지의 잘못을 사죄했다.
시바지는 아들을 일으켜 앉히고 세상을 살아가는 도리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했으며, 선과 악을 가리는 안목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또한 왕국이 보유한 모든 요새와 재물, 보석의 목록을 삼부하지에게 보여주며 곧 막중한 국가의 짐이 그의 어깨에 놓이게 될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시바지는 곧 깨달았다. 삼부하지의 마음속에는 진심 어린 참회가 없었고, 사죄는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결국 시바지는 삼부하지를 다시 판할라 요새에 엄격히 감금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동생 라자람이 겨우 열 살에 불과한 상황에서, 마라타 왕국이 삼부하지의 손에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시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왕가를 둘러싼 우환들
시바지는 여덟 번의 혼인을 통해 두 아들과 여섯 딸을 두었다. 그러나 말년에 살아남은 아내는 세 명뿐이었다. 평생 그의 나침반이 되어 준 어머니 지자바이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 샤하지 본슬레 역시 하늘나라로 갔다. 총명하고 현명했던 정비(正妃) 사이바이도 먼저 세상을 하직했다. 삼부하지가 바로 사이바이의 아들이었지만, 그는 교양도 인품도 없는 자식으로 아버지의 왕국에 온갖 폐를 끼치고 있었다.
차남 라자람의 어머니 소야라바이는 성질이 매우 험악하고 날카로웠으며, 밤낮으로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넘기려는 음모를 꾸미곤 했다. 한편 왕국의 여덟 명의 대신을 통솔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능력을 갖춘 군주가 반드시 필요했는데, 시바지의 가문 안에서는 그런 인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걱정거리들이 겹치면서 시바지는 이미 중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삼부하지에게 다시 실망한 시바지는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고, 1679년 12월 13일부터는 국정을 내려놓고 스마르트 구루 람다스의 발밑에 앉아 신께 대한 예배에 몰두했다.
라이가드로의 마지막 여행
1680년 2월 4일, 시바지는 푸네를 떠나 라이가드로 향했다. 3월 7일에는 라자람의 성년 의례를 거행하게 했고, 3월 15일에는 고(故) 총사령관 프라타프라오의 딸 드라파티 바이와 혼인식을 올렸다. 그러나 3월 23일, 시바지는 갑자기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이내 피가 섞인 설사 증세가 나타났다.
12일간 어떤 약도 효험을 보지 못하자, 시바지는 자신의 임종이 가까웠음을 깨달았다. 4월 3일, 그는 대신들, 제후들, 여덟 명의 수령과 장군들을 불러 국가에 관한 필요한 지시를 내리고 종교 의식도 거행하게 했다. 이어 백성들을 불러 모아 육신은 유한하되 영혼은 불멸이라는 설법을 남겼다. 바로 그날, 시바지는 영원히 눈을 감았다.
남인도에 거대한 힌두 왕국을 세운 창업자, 차트라파티 시바지 라제는 1680년 4월 3일 인도의 성스러운 땅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인도 역사의 수많은 페이지가 이 위대한 왕을 찬양하는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그의 생명이 무한한 하늘로 날아가던 그 순간, 궁전 안팎의 수많은 사람들은 슬픔에 잠긴 채 서 있었다.
시바지 사후: 독살설과 왕가의 몰락
일부 역사학자들은 소야라바이가 아들 라자람에게 왕위를 넘기기 위해 시바지를 독살했다고 주장한다. 시바지가 피 섞인 설사 증세를 보였다는 점이 이 견해의 근거로 제시된다.
시바지가 서거한 후, 대신들은 장자 삼부하지를 마라타의 왕으로 추대했다. 삼부하지는 아버지를 해친 살해범으로 간주된 소야라바이를 처형했다. 시바지의 생존 아내였던 풋리 바이는 시바지의 시신 곁에서 순장 의식(사티)에 따라 함께 세상을 떠났다. 또 다른 아내인 사크와르 바이는 며칠 후 아우랑제브의 군대에게 붙잡혀 감옥에 갇혔다. 삼부하지의 아내 예수바이와 그녀의 아들 샤후지 역시 사크와르 바이와 함께 아우랑제브에게 포로로 잡혔다. 시바지의 가족들은 오랫동안 아우랑제브의 감옥에 갇혀 지내야 했다.
얼마 후 삼부하지 역시 아우랑제브에 의해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살해되었다. 그의 눈은 적출되었고 혀는 뽑혔으며 살가죽은 벗겨졌고, 심지어 신체의 일부는 잘려 개들에게 던져졌다. 삼부하지는 15일간의 지옥 같은 고문 끝에 1689년 3월 11일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무굴 제국을 몰아내고 힌두 제국(파다파드샤히) 건립을 꿈꾸었던 차트라파티 시바지의 가문은, 무굴의 손아귀에 끔찍한 박해를 견뎌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