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가 그린 초상화 속 표트르 1세.
로마노프 왕조의 개혁 군주, 표트르 대제
표트르 1세(표트르 대제, 1672~1725)는 1682년부터 1725년까지 러시아를 통치한 로마노프 왕조의 차르이다. 그는 1672년 6월 9일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으며, 차르 알렉세이 1세와 나탈리야 나리시키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복잡했던 즉위 과정
표트르가 네 살 되던 해 아버지 알렉세이 1세가 사망하면서 이복형 페도르 3세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6년 뒤인 1682년 페도르 3세가 사망하자, 표트르와 정신적 장애를 지닌 또 다른 이복형 이반 사이에 왕위 계승 분쟁이 벌어졌다. 결국 두 형제가 공동으로 왕위에 올랐고, 누이 소피아가 1689년까지 섭정으로서 실권을 행사했다. 형제는 1696년 이반 5세가 사망할 때까지 공동 통치를 이어갔다. 한편 표트르는 1689년 옥도키야 로푸히나와 결혼했으나 이 결혼은 순탄하지 못했고, 1698년 아내를 수도원으로 보내면서 끝을 맺었다.
서유럽 견학과 개혁의 시작
1697년 표트르는 폴란드 왕 선거에 개입하여 아우구스트 2세(강왕)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국왕 선출을 지원했다. 또한 이반의 사망 이후 처음으로 단독으로 거둔 승전이기도 한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아조프 요새를 함락시켰는데, 이 경험을 통해 그는 강력한 함대 건설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1697년부터 1698년까지 표트르는 명목상 신성 동맹 재건을 목적으로 서유럽을 순방했다. 이 여행에서 그는 서구의 생활 방식과 관습을 직접 체험했고, 조선술을 비롯한 최신 기술과 학문을 익혔다. 귀국 후 그는 러시아의 근대화 개혁에 착수하여 보야르들에게 수염을 깎고 서양식 복장을 입도록 강제했으며, 1700년에는 서양식 달력을 도입했다.
대북방전쟁과 제국의 확장
이후 표트르는 더욱 광범위한 개혁을 추진했다. 1700년 새 총대주교를 임명하지 않음으로써 모스크바 총대주교제를 사실상 폐지했고, 1721년에는 이를 대체하는 성무회(시노드)를 설립했다. 1711년에는 전쟁으로 부재하는 동안 국정을 운영할 원로원(상원)을 창설했으며, 징병 제도와 세금 제도 개선에도 힘썼다.
대외적으로는 1700년부터 1721년까지 스웨덴과 20여 년에 걸친 대북방전쟁을 치렀다. 1712년에는 직접 건설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옮겼다. 1709년 폴타바 전투의 대승은 발트해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1721년 니스타트 조약을 통해 러시아는 잉그리아, 카렐리야, 에스토니아, 리보니아를 획득했다. 이 전쟁의 승리 덕분에 표트르는 원로원으로부터 '대제(위대한)'라는 별칭을 받았다.
생애의 마지막과 남긴 유산
차르는 생애 마지막 몇 년을 동방 영토 확장에 바쳤다. 그는 캄차카를 정복했고,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통해 카스피해 지역에서 러시아의 위상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그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고, 1725년 2월 8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