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도르 로코토프가 그린 예카테리나 2세의 초상화
프로이센 공주에서 러시아 황후로
예카테리나 2세 대제(1729~1796)는 러시아 제국의 여황제이자 표트르 3세의 아내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분할에 깊이 관여한 인물입니다. 본명은 조피 아우구스타 프리데리케로, 당시 프로이센령이던 슈체친에서 안할트체르프스트 가문 출신 프로이센 장군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러시아 여황제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는 황위 계승자인 표트르의 배우자로 소피아를 선택했습니다. 소피아는 1744년 러시아로 건너가 정교회로 세례를 다시 받으면서 '예카테리나'라는 이름을 얻었고, 1745년 표트르 대공과 결혼했습니다. 1762년 엘리자베타가 사망하고 표트르 3세가 즉위하면서 그녀는 황후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궁정 쿠데타, 그리고 단독 통치의 시작
그러나 남편의 즉위 불과 반년 만인 1762년 7월, 예카테리나는 궁정 쿠데타를 일으켜 표트르 3세를 폐위시키고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폐위된 표트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살해되었으며, 이후 예카테리나는 1796년 사망할 때까지 약 34년간 러시아를 단독으로 통치했습니다.
대대적인 영토 확장과 폴란드 분할
예카테리나 2세는 뛰어난 능력과 잔혹함을 동시에 보여준 군주로 기억됩니다. 그녀의 통치기에 러시아는 국경을 크게 넓혔습니다. 오스만 제국(터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흑해 연안의 광대한 영토를 손에 넣었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도 병합했습니다. 1764년에는 자신의 연인이었던 스타니스와프 포니아토프스키를 폴란드 왕위에 앉혔으며, 1772년·1793년·1795년 세 차례의 폴란드 분할에 모두 가담했습니다. 나아가 1794년 코시치우슈코 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하며 폴란드라는 국가의 운명을 사실상 확정지었습니다.
'계몽군주'라는 명성과 그 이면
그녀는 볼테르, 디드로 등 프랑스 계몽사상가들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계몽군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문예 후원과 개혁 구상 뒤에는 농노제가 오히려 강화되는 모순이 있었고, 1773~1775년에는 대규모 푸가초프 농민 반란을 피로 진압해야 했습니다.
최후
1796년 11월, 예카테리나 2세는 뇌졸중(중풍)으로 추정되는 원인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뒤를 이어 아들 파벨 1세가 황위에 올랐습니다.
『예카테리나 2세 친필 일기』 어디서 구매할 수 있을까?
예카테리나 2세가 직접 집필한 회고록과 일기는 그녀의 권력 상승 과정과 내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1차 사료로 평가받습니다. 관심이 있다면 주요 온라인 서점이나 역사 문헌 출판사를 통해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