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오 12세(Pius XII)
비오 12세는 이탈리아 출신의 로마 가톨릭교회 주교이자 교황이다. 세속명은 에우제니오 마리아 주세페 조반니 파첼리(Eugenio Maria Giuseppe Giovanni Pacelli)로, 1876년 3월 2일 바티칸과 인연이 깊은 가문의 아들로 로마에서 태어났다.
1894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신학교에 입학하여 철학, 수학, 그리스어를 공부했다. 어린 시절부터 언어, 특히 라틴어에 남다른 재능과 애정을 보였으며, 법학도 함께 익혔다.
교황이 되기까지의 경력
1899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1902년에는 민법과 교회법 두 분야 모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무렵부터 그는 교회 내에서 빠르게 승진하기 시작했다. 1914년에는 교황청 특별교무성의 비서가 되었고, 1917년에는 뮌헨 주재 교황 대사이자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1920년에는 베를린 주재 교황 대사로 자리를 옮겼으며, 이후 추기경에 서임되어 교황청 국무장관을 지냈다. 1933년에는 아직 에우제니오 파첼리라는 이름이던 그가 제3제국과 가톨릭교회 간의 협약(콘코르다트) 체결 협상을 주도했다.
교황 비오 12세의 재위기
1939년 비오 11세가 선종하자 콘클라베는 그를 새 교황으로 선출했고, 그는 '비오 12세'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재위 초기부터 그는 평화 유지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에는 제3제국의 침략을 규탄했지만, 유대인에 대한 잔혹 행위에 대해서는 끝내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물론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스트와의 타협 역시 여러 차례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심지어 많은 이들이 그를 "히틀러의 교황"이라 불렀다. 또한 그는 유럽의 가톨릭 성향 독재 정권들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그는 대중매체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최초의 교황이기도 하다. 성좌에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하여 교황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달하는 통로를 마련했으며, 1951년부터는 가톨릭교회의 전례 개혁을 착수했다. 그는 1958년 자신의 거처였던 카스텔간돌포에서 선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