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왕 샤를 2세(823~877)
샤를 2세는 '경건왕(Louis le Pieux)'으로 알려진 루트비히 1세와 바이에른 출신 두 번째 아내 유디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루트비히 1세는 아내 유디트의 영향을 받아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장성한 아들들인 로타르, 피핀, 독일인 루트비히보다 막내인 샤를을 몹시 아꼈다. 이러한 편애는 훗날 프랑크 왕국의 내전으로 이어지는 씨앗이 되었다.
계승 분쟁과 퐁트누아 전투(841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제국의 계승을 놓고 형제 간의 갈등이 폭발했다. 샤를 2세는 독일인 루트비히와 손을 잡고, 형 로타르와 피핀 2세(838년에 사망한 피핀의 아들)의 연합군과 맞섰다. 841년 푸아예 지방의 퐁트누아(Fontenoy-en-Puisaye)에서 벌어진 격전에서 샤를 2세와 루트비히의 연합군은 승리를 거두었다.
베르덩 조약과 서프랑크 왕국 건설(843년)
843년 체결된 베르덩 조약은 샤를마뉴가 세운 거대한 프랑크 제국을 세 개로 분할하는 결과를 낳았다. 샤를 2세는 서부 갈리아 지역, 즉 오늘날 프랑스의 뼈대가 되는 영토를 차지하여 서프랑크 왕국을 세웠다. 그러나 그의 권위가 전 영토에서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었고, 특히 지방 귀족들의 반발에 시달려야 했다.
노르만족의 침입과 로베르 르 포르
당시 노르만족(바이킹)은 하천을 따라 내륙 깊숙이 침입하며 왕국을 유린하고 있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샤를 2세는 862년 앙주 백작 로베르 르 포르(Robert le Fort)에게 나라 방위의 지휘권을 맡겼다. 처음에는 왕에게 적대적이었던 로베르였지만, 이후 브르타뉴인과 노르만족으로부터 왕국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다했다.
황제 대관과 최후
샤를 2세는 875년 교황 요한 8세로부터 황제로 대관받으며 할아버지 샤를마뉴의 후계자로서 명분을 확립했다. 그러나 877년, 이탈리아 원정에서 돌아오던 길에 그의 인생은 막을 내렸다. 그가 남긴 서프랑크 왕국은 아들인 더듬이 루이 2세(Louis II le Bègue)에게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