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부르봉 공작 샤를 3세(1490~1527), 프랑스를 배신한 콩스타블의 영화와 몰락

부르봉 공작 샤를 3세(1490~1527), 프랑스를 배신한 콩스타블의 영화와 몰락

루이 12세와 함께한 이탈리아 원정

샤를 3세는 1507년 국왕 루이 12세를 수행하여 제4차 이탈리아 원정에 동행하며 제노아로 진군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이미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프랑스 궁정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콩스타블이라는 최고의 영광

마리냐노 전투 이후 프랑수아 1세가 밀라노 공국을 정복하자, 샤를은 프랑스군 최고 사령관인 콩스타블(대원수)에 임명되었고, 동시에 밀라노의 부왕 직책도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귀족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높은 명예였습니다.

영지 분쟁과 왕실과의 갈등

그러나 1521년 아내가 사망하면서 그의 운명은 급격히 기울기 시작합니다. 프랑수아 1세의 어머니인 사부아의 루이즈가 부르봉 가문의 방대한 영지 상속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다행히 재판 결과는 샤를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콩스타블에 대한 모욕과 견제는 날로 심해졌습니다.

카를 5세와의 밀약과 망명

참지 못한 설움 끝에 샤를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와 비밀 협상을 시작했지만, 음모가 발각되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1523년 그는 프랑스를 떠나 망명할 수밖에 없었고, 몰수된 그의 재산은 모두 왕령에 편입되었습니다.

파비아 전투의 영웅

황제는 샤를을 이탈리아 주둔 제국군 중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옛 조국의 군대와 맞서 싸우게 된 그는 세시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 전투에서 '공포 없는 기사'로 불리던 프랑스의 전설적인 기사 바야르가 전사했습니다. 1525년에는 파비아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대파하고 프랑수아 1세를 직접 포로로 잡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로마에서의 비극적 최후

그러나 황제는 샤를의 거대한 야망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고, 점차 그를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버려진 것을 통감한 샤를은 1527년 제국군을 이끌고 로마를 공성하던 중 전사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이후 '로마 약탈'이라 불리는 참혹한 사건의 서막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