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샤를 7세(1403~1461)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샤를 7세(1403~1461)

왕위 계승 위기 속에서 시작된 통치

샤를 7세는 '미친 왕'이라 불린 샤를 6세의 아들이었다. 1420년 체결된 트루아 조약에 따라 그의 왕위 계승권은 무효화되고 영국 왕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그의 정통성은 처음부터 의문부호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아르마냐크파가 그의 정통성을 인정하며 지지했고, 아버지가 서거한 1422년부터 사실상 프랑스의 왕으로서 통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잔 다르크가 열어준 랭스 대관식의 길

결정적인 전환점은 잔 다르크의 등장이었다. 그녀가 이끄는 군대가 영국군을 상대로 거둔 연이은 승리는 샤를 7세가 랭스로 진격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때까지 남부 도시 부르주에 머물러 있어 '부르주의 왕'이라 불리던 그는 1429년 드디어 랭스 대성당에서 정식 대관식을 거행하며 명실상부한 프랑스 국왕이 되었다.

백년전쟁의 종식

잔 다르크가 1431년 순교한 후에도 그녀가 불러일으킨 반격의 기운은 꺾이지 않고 이어졌다. 프랑스군은 잃었던 영토를 차례로 회복해 나갔고, 마침내 1453년에는 영국이 프랑스 본토에 남겨둔 영토가 칼레 항구 하나뿐이 될 만큼 전세를 완전히 뒤집었다.

상비군과 상설 세금으로 강화된 왕권

전쟁의 승리는 샤를 7세에게 왕권 강화의 발판이 되었다. 그는 프랑 궁수(francs-archers)와 오르당낭스 중대(compagnies d'ordonnance)로 구성된 상비군을 창설했고, 타예(taille)와 간접세(aides) 같은 상설 세금을 도입하여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확립했다. 나아가 1438년 부르주 국교조칙(Pragmatic Sanction of Bourges)을 반포해 프랑스 교회에 대한 교황의 권한을 크게 제한함으로써 왕권의 우위를 공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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