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마뉴: 유럽 중세를 연 프랑크 왕국의 대제
샤를마뉴(Charlemagne, Carolus Magnus, '대왕 카를')는 약 742년 4월 2일경 프랑스 퀴에르지(Quierzy)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프랑크 왕국의 왕 피핀 3세(소 피핀, Pépin le Bref)의 장남이었다. 그의 생애는 서기 742년 4월 2일경부터 814년 1월 28일까지 이어졌다.
즉위와 동생 카를로만과의 공동 통치
754년, 교황 스테파노 2세는 샤를마뉴와 그의 동생 카를로만(Carloman) 두 형제에게 함께 성유를 부어 프랑크의 왕으로 축성했다. 아버지 피핀이 사망하자 샤를마뉴는 물려받은 왕국을 동생 카를로만과 나누어 다스려야 했다.
그러나 771년 카를로만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샤를마뉴는 분열되었던 왕국을 다시 하나로 통합했고, 이후 끊임없는 정복 전쟁을 통해 영토를 계속 넓혀 나갔다.
기독교 왕국 건설과 강압적 개종
샤를마뉴는 교황권과 교회의 열렬한 수호자였다. 정복한 민족들에게 자신의 신앙인 기독교를 강요하며 기독교 왕국을 세우고자 했다. 때로는 세례가 피로 집행되기도 했는데, 특히 작센족(Saxons)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드러난 그의 잔혹함은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학문과 문화의 부흥을 이끌다
무력만으로 명성을 얻은 것이 아니라, 샤를마뉴는 지식과 학문에 대한 깊은 열망을 지닌 군주이기도 했다. 아헨(Aix-la-Chapelle, 현 독일 아헨)에 궁전을 건설한 그는 교육을 진흥하고 법률을 제정했으며, 봉건 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사상가, 학자, 예술가, 필사가들을 궁정으로 불러 모아 시대에 앞선 르네상스, 이른바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막을 열었다.
'로마인의 황제' 대관식
800년, 교황 레오 3세는 샤를마뉴에게 관을 씌우며 '로마인의 황제(Emperor of the Romans)'로 선포했다. 이는 476년 마지막 서로마 황제가 폐위된 지 300여 년 만에 처음 등극하는 로마 황제였다. 샤를마뉴는 카롤링거 왕조 최고의 인물로 평가받으며, 중세 유럽의 정치·문화적 질서를 확립한 위대한 통치자로 기록되었다.

샤를마뉴의 신분
- 프랑크의 왕(King of the Franks)
- 로마인의 황제(Emperor of the Rom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