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학자 가문에서 태어난 조르주 퐁피두(Georges Pompidou)는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수학하며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문과 아그레가시온(국가 교직 자격 시험)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자유정치대학(훗날의 시앙스포)에서도 수료하는 등 학업적으로 완벽한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군에 소집된 그는 전후 파리 앙리 4세 고등학교 예비반 교수로 재직했고, 이후 국사원 심의관을 거쳐 로트실드 은행 이사까지 지낸 다재다능한 인물이었습니다.
총리에서 대통령으로
1962년 에비앙 협정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된 직후, 퐁피두는 샤를 드골 대통령에 의해 미셸 드브레의 후임으로 총리에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1969년에는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며 정점에 올랐습니다.
집권기의 주요 업적
샤방델마 내각(1969~1972)은 '새로운 사회'라는 구상을 추진하며 현대미술센터(훗날의 퐁피두 센터) 건설을 시작했고, 1970년에는 근로자 최저임금 제도인 SMIC를 도입했습니다.
이어진 피에르 메스메르 내각은 격변의 시기를 마주했습니다. 1973년 오일 쇼크, 유럽 통화 뱀(스네이크) 제도에서 프랑스의 이탈, 그리고 같은 해 5월 닉슨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등이 이 시기의 주요 사건들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
퐁피두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기 전인 1974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사후에는 상원 의장 알랭 포에르가 권한대행을 맡아 국가 운영을 이어갔습니다.
프로필
생몰연도: 1911년 ~ 1974년
분야: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