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수아 앙리오(François Hanriot, 1761~1794)는 프랑스 혁명기 파리를 대표하는 급진적 무력 지도자였다. 평범한 하급 공무원 출신이었던 그는 혁명의 격랑 속에서 파리 혁명군의 수장으로 부상했고, 왕정의 몰락부터 9월 학살, 지롱드파 축출, 그리고 로베스피에르의 최후까지, 프랑스 혁명의 거의 모든 격전지에 이름을 남겼다.
평민 출신, 혁명의 무대로 오르다
앙리오는 1761년 파리에서 태어나 세금 징수 사무소의 서기로 근무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1789년 혁명이 발발하면서 그의 인생은 급격히 바뀐다. 파리 시민들의 자발적 무장 조직인 국민방위대에 합류한 그는 열렬한 혁명 신봉자이자 자코뱅파의 강경한 지지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왕정 몰락과 9월 학살
1792년 8월 10일, 앙리오는 파리 민중과 함께 튈르리 궁을 습격하는 봉기에 가담해 왕정 전복에 일조했다. 직후 프랑스가 위기에 처하자 감옥에 수감된 정치범들에 대한 공포심이 폭발했고, 같은 해 9월에는 수백 명의 수감자가 학살당하는 '9월 학살'이 벌어졌다. 앙리오는 이 참혹한 사건에도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리 무력의 실질적 지배자, 지롱드파 축출
1793년, 앙리오는 파리 국민방위대와 혁명군의 지휘권을 장악하며 파리 무력의 실질적인 통제자가 되었다. 그가 거느린 무장 부대는 국회를 포위하고 지롱드파 의원들을 압박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해 6월 2일, 앙리오의 병력들이 상원 주변을 봉쇄하자 지롱드파는 결국 축출되었고, 이로써 산악파와 자코뱅파가 중심이 된 혁명 정부의 시대가 열렸다. 즉, 앙리오의 총구 없이는 지롱드파의 몰락도, 이후의 혁명 정부 성립도 있기 어려웠던 것이다.
로베스피에르와 에베르주의자들
앙리오는 극좌 성향의 에베르주의자들과 친분이 깊었다. 1794년 에베르 등이 처형될 때 그 또한 숙청 대상에 올랐으나, 로베스피에르의 비호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 경험은 그를 로베스피에르에게 더욱 깊이 매여 있게 만들었다.
테르미도르 반동과 함께 끝난 생애
1794년 7월 27일, 혁명력 테르미도르 9일. 국민공회에서 로베스피에르가 체포되자 앙리오는 그를 구출하기 위해 파리 시청으로 향했다. 그러나 구출 작전은 실패했고, 밤사이 반동 세력에게 체포된 그는 다음 날 로베스피에르, 생 쥐스트, 쿠통 등과 함께 단두대에서 최후를 맞았다. 혁명을 무력으로 밀어붙이며 살아온 그의 생애는, 결국 같은 무력의 논리 안에서 끝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