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 변경백국의 백작이었던 롤랜드는 샤를마뉴 대제의 조카로 전해진다. 778년, 스페인의 무슬림 세력에 대한 원정을 마치고 귀환하던 길목인 론스바예스 고개에서 롤랜드가 이끄는 후위 부대는 가스콩(바스크) 병력의 기습을 받아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이 비극적 사건은 중세 문학의 걸작 『롤랑의 노래(La Chanson de Roland)』의 모티프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작품 속에서는 실제 역사와 달리 가스콩인이 무슬림으로 치환되어 적으로 그려진다. 롤랜드는 또한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수많은 영웅 서사시에도 등장하며, 보검 '두랑달(Durandal)'과 함께 프랑스 팔라딘(성기사)의 완벽한 이상형으로 자리매김했다.
장마리 롤랑 드 라 플라티에르(Jean-Marie Roland de La Platière, 1734~1793)
지롱드파 소속 정치인이었던 그는 베르니오, 브리소 등 당내 핵심 인물들과 깊은 친분을 쌓았다. 1792년 내무장관에 임명되었으나, 같은 해 9월에 벌어진 대학살을 막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1793년 1월, 그는 루이 16세의 사형 선고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고, 이후 체포를 피해 루앙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아내의 처형 소식을 접한 그는 절망 끝에 스스로 심장을 찔러 생을 마감했다.
그의 아내 마논 롤랑은 뛰어난 교양을 갖춘 인물로, 파리에서 살롱을 운영하며 지롱드파 인사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지롱드파의 '뮤즈'로 불린 그녀는 단두대에 오르는 순간까지 담담하게 말을 남겼다. "오, 자유여! 네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악이 저질러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