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소년왕
시게베르트 3세는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의 왕 다고베르 1세(Dagobert I)와 라그네트루데(Ragnetrude)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는 불과 세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명으로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의 왕위에 올랐으며, 아우스트라시아 공작 아달기젤(Adalgisel)이 어린 왕의 교육과 통치를 보좌하는 후견인 역할을 맡았다.
그리모알드의 등장과 튀링겐 전쟁
640년, 그리모알드(Grimoald)가 궁정 최고 실권 직위인 궁재(major domus)에 오르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그리모알드는 열 살에 불과한 시게베르트를 반란을 일으킨 튀링겐(Thuringia) 원정 전쟁에 내몰았다. 이 전쟁은 실패로 돌아갔고, 어린 왕의 위신은 크게 실추되었으며 왕국의 실질적인 권력은 점차 그리모알드의 손으로 넘어갔다.
결혼과 양자 입적
시게베르트는 성인이 된 뒤 아일랜드 출신의 아름다운 여성 에므네칠디스(Emnechildis)와 결혼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후계자를 얻지 못하자, 그는 그리모알드의 지속적인 압박에 못 이겨 그리모알드의 아들을 자신의 양자로 들였고, 메로빙거 왕조의 전통 이름인 '칠데베르트(Childebert)'를 붙여주었다.
그러나 생애 말년에 시게베르트는 마음을 돌려 자신의 친아들인 다고베르 2세(Dagobert II)를 아우스트라시아의 정당한 왕위 계승자로 지명했다.
비극적 결말
656년경 시게베르트가 사망하자 그리모알드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그는 어린 다고베르 2세와 그의 어머니를 아일랜드의 한 수도원으로 추방해 버리고, 대신 자신의 아들 칠데베르트를 왕위에 앉혔다. 이 사건은 메로빙거 왕조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궁정 음모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추방되었던 다고베르 2세는 훗날 복위하여 성왕으로 기억되는 인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