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필립의 일생
루이 필립(Louis-Philippe, 1773~1850)은 발루아 공작(1773~1785), 샤르트르 공작(1785~1793), 오를레앙 공작(1793~1830)을 차례로 거쳤으며, 1830년부터 1848년까지 '프랑스인의 왕(Roi des Français)'으로 재위했습니다.
혁명기와 망명의 나날
어린 시절 루이 필립은 자유주의 사상에 기반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아버지인 오를레앙 공작 루이 필립 조제프와 마찬가지로 혁명파에 가담하고 자코뱅 클럽에도 입회했으며, 1792년에는 뒤무리에(Dumouriez) 장군 휘하에서 발미 전투와 젬마프 전투에 참전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국민공회(Convention)에 대해 항의를 시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결국 프랑스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는 스위스, 미국, 잉글랜드를 거쳐 시칠리아로 피신했고, 1809년 그곳에서 마리아멜리 드 부르봉(Marie-Amélie de Bourbon)과 결혼했습니다.
왕위 등극과 7월 왕정
왕정복고 시대, 루이 18세와 샤를 10세의 통치 아래 프랑스로 돌아온 루이 필립은 흩어진 가문의 재산을 되찾는 한편 야당 세력과 연대하며 권력 상승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영광의 사흘(Les Trois Glorieuses)'이라 불리는 7월 혁명(1830년 7월 27일~29일)은 그가 왕국 중장으로 추대되고, 이어 프랑스인의 왕으로 즉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격변으로 흔들리고 약화된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그는 1814년 헌장을 일부 수정한 형태로 유지하는 통치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처럼 수립된 7월 왕정(Juillet Monarchy)은 반감 속에 있던 유럽 열강 사이에서도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공화파의 이익보다 부르주아 계급의 편의를 우선시했고, 결국 금융·경제 위기와 요구되던 개혁의 부재는 1848년 혁명 당시 그의 퇴위로 이어졌습니다.
망명과 최후
퇴위 후 루이 필립은 잉글랜드로 망명했으며, 프랑스의 마지막 국왕인 그는 1850년 8월 그곳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기본 정보
- 생몰: 1773년 ~ 1850년
- 신분: 프랑스인의 왕(King)
- 주요 작위: 발루아 공작, 샤르트르 공작, 오를레앙 공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