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년 시절과 초기 군 경력
호아킨 데 라 페수엘라 이 산체스(Joaquín de la Pezuela y Sánchez)는 페루의 끝에서 두 번째 부왕으로, 1761년 5월 22일 스페인 우에스카 주 나발(Naval)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칸타브리아 지방의 명문 가문 혈통으로, 아버지는 후안 마누엘 데 라 페수엘라 이 무뇨스 데 벨라스코(Juan Manuel de la Pezuela y Muñoz de Velasco) 중위였으며 어머니는 마리아나 산체스 데 아라곤(Mariana Sánchez de Aragón)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세고비아 포병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1778년 소위 계급으로 졸업했습니다. 이후 1782년 지브롤터 공성전에 참전했고, 대위로 진급한 뒤에는 혁명 프랑스와의 전쟁 과정에서 기푸스코아와 나바라 지역에서 벌어진 전역에도 참여했습니다.
페루 도착과 군사적 성공
이후 타팔라(Tafalla) 포병대 지휘관으로 근무하던 중, 1804년 8월 왕령에 따라 리마와 카야오(Callao) 수비대의 포병 부대를 재편성하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그는 1805년 대령 계급을 달고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페루에 도착했습니다.
부왕령의 수도에서 그는 산타 카탈리나 병영 건설, 화약 공장과 대포 주조소 설립, 사격 훈련 규정 제정 등을 추진했습니다. 이 시기 내내 그는 부왕 아바스칼(Abascal)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자신의 지략과 결단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1811년 여단장으로 진급해 페루 전역 포병 부감찰관이 되었고, 1813년 4월에는 리오데라플라타(Río de la Plata) 애국파에 맞서 차르카스(Charcas)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왕당파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증원군과 보급물자를 이끌고 신속히 임지로 향했으며, 독립파와의 교전에서 패배하며 흔들렸던 군의 규율을 회복시켰습니다. 빌카푸키오(Vilcapuquio), 아요우마(Ayohuma), 빌루마(Viluma) 전투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었고, 이러한 공로로 1814년 야전원수, 1816년 왕립군 중장으로 차례차례 진급했습니다.
페루 부왕으로 임명되다
아바스칼이 직무 해제를 요청함에 따라, 승전을 거듭하던 페수엘라는 1815년 11월 14일 그의 후임으로 페루 부왕 겸 총독 및 대장군(Captain General)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의 공식적인 리마 입성은 1816년 8월 7일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실로 위기의 국면에서 지휘권을 넘겨받았습니다. 산마르틴(San Martín)이 이끄는 해방 원정대가 리오데라플라타 연안에서 준비 중이었는데, 페수엘라는 풍부한 군사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진격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했습니다. 부왕령 방어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조치들을 시행하려 했으나, 그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은 라세르나(La Serna) 장군의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1818년 칠레에서 애국파가 승리를 거두자 페루의 크레올 지도자들이 크게 고무되었고, 브라운(Brown)과 부샤르(Bouchard) 원정대가 연안에서 벌인 선동 활동이 이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결국 연안 통제권을 상실하면서 산마르틴 군대가 와우라(Huaura)에 도착해 주둔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1821년 1월 29일, 왕실군이 야영 중이던 아즈나푸키오(Aznapuquio)에서 유명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해방 원정대의 침공 앞에서 부왕이 무기력하게 방관했다는 점을 구실 삼아, 전쟁 평의회를 구성한 고위 장교들은 페수엘라에게 지휘권을 사임할 것을 요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귀국과 말년
축출된 부왕은 즉시 가족과 함께 리마 근교 마그달레나(Magdalena)에 마련해 둔 별장으로 물러났고, 1821년 6월 29일 지체 없이 조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본국에서 그는 훌륭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1825년 누에바카스티야(Castilla la Nueva) 군대의 총사령관직을 맡았고, 산 에르메네길도 훈장 대십자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또한 1830년 3월 31일 왕령에 따라 상페루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빌루마 후작(Marqués de Viluma) 작위를 하사받았습니다.
페수엘라는 1793년 산탄데르에서 도냐 앙헬라 데 세바요스 이 올라리아(Ángela de Ceballos y Olarria)와 결혼했으며, 아내는 그의 아메리카 원정에 함께 동행했습니다. 그는 1830년 9월 24일 마드리드에서 6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