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페루의 성녀 멜초리타 사라비아, 가난 속에서 빛난 경건한 삶

멜초리타 사라비아의 생애

멜초라 사라비아 타사이코(Melchora Saravia Tasayco), 일명 '멜초리타'는 1897년 1월 6일 페루 이카(Ica) 지역 친차(Chincha) 현에 속한 산 페드로 데 그로시오 프라도(San Pedro de Grocio Prado) 마을에서 수공예 직조업을 하던 소박한 가정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업을 익혀 갈대와 왕골 등으로 바구니, 돗자리, 자루 등을 만들며 성실하게 살아갔습니다.

그녀는 지극히 독실한 신앙인으로, 친차에 있는 성당을 찾는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으며 고향 산 페드로에서는 노동과 기도 속에서 평생을 보냈습니다. 기독교적 미덕이 그녀의 영혼 깊이 뿌리내렸고, 자신 역시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자를 찾아가 위로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여겼습니다.

이처럼 모범적이고 감동적인 삶 덕분에 그녀는 산 페드로 주민들에게 깊은 존경을 받았으며, 사람들은 조언과 물질적 도움, 영적 힘을 얻고자 그녀의 초라한 집을 찾았습니다. 멜초리타의 명성은 이미 생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회 제3회 입회와 은둔 생활

1924년 8월 15일, 이카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의 신부 미겔 가마라(Miguel Gamarra)는 아직 젊었던 멜초리타를 그로시오 프라도의 프란치스코회 제3회(Franciscan Third Order) 수련자로 받아들였습니다. 이후 1946년 1월 31일 형제회 회록에는 그녀가 고문 및 예배 담당 서리 직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회 제3회 회원으로서 그녀는 페루의 대성녀 로사 데 리마(Santa Rosa de Lima)를 본받아 자신의 집 안에 은수처를 마련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곳에는 그녀가 사용하던 소박한 요람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순례자들은 기적을 구하기 위해 그 위에 몸을 눕히곤 합니다.

선종과 지금까지 이어지는 공경

그녀는 1951년 12월 4일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교회 당국에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시성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모든 신도들은 그녀를 '복녀 멜초리타(Beatita Melchorita)'라고 부르며 공경합니다. 생전에도, 그리고 선종 이후에도 그녀의 전구 아래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났다고 전해집니다.

친차 묘지 산타 엘레나(Santa Elena) 구역(C-33)에 위치한 그녀의 무덤 역시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