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메이 제미슨(Mae Jemison), 최초로 우주에 간 흑인 여성 우주비행사

메이 캐럴 제미슨(Mae Carol Jemison, 1956년~ )은 미국의 우주비행사이자 엔지니어입니다. 1992년 우주왕복선 엔데버(Endeavour)호에 탑승하며 우주에 간 최초의 흑인 여성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우주를 꿈꾸던 소녀

메이 제미슨은 1956년 10월 17일 미국 앨라배마주 디케이터에서 영어·수학 교사였던 어머니 도러시 그린(Dorothy Green)과 자선단체 직원이었던 아버지 찰리 제미슨(Charlie Jemison) 사이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세 살이 되던 해,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주기 위해 가족 전체를 시카고로 이주시켰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메이는 우주여행을 꿈꿨고 과학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습니다. 부모님은 딸의 열정을 아낌없이 지지하며 호기심과 실험 정신을 키워줄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의지가 강했던 메이는 "과학은 여자의 직업이 아니다"라는 말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을 때도 여성 우주비행사가 없다는 사실에 속으로 분노했다고 합니다.

"자라면서… 나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았어요. 우주와 별, 공룡을 좋아했죠. 언제나 탐험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폴로 임무가 방송될 때 모두가 우주에 열광했지만, 저는 여성 우주비행사가 없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던 기억이 있어요. 사람들이 이유를 설명해 주려 했지만 저는 납득하지 않았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시절

메이 제미슨의 열정은 과학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춤도 깊이 사랑해서 아프리카 무용부터 재즈, 발레, 현대무용까지 다양한 장르의 댄스 레슨을 받았습니다. 과학과 우주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프로 무용가의 꿈도 함께 키웠습니다. 14세에는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마리아 역 오디션에 도전했는데, 주역은 놓쳤지만 댄서 역할을 따내며 무대에 섰습니다.

예술과 과학을 모두 사랑하는 메이는 결국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습니다. 어머니는 "의사가 되면 계속 춤출 수 있다"며 의사가 되기를 권유했습니다. 16세에 스탠퍼드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대학 생활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일상처럼 존재했고, 일부 교수와 학생들은 그녀에게 냉담하게 대했습니다. 하지만 당찬 성격과 확고한 자신감 덕분에 이 시기를 잘 견뎌냈고, 1977년 화학공학 학사 학위를, 1981년에는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졸업 후 메이는 평화봉사단(Peace Corps)에 합류하여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에서 2년간 자원 의사로 활동하며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엔데버호에 탑승하다

1983년 샐리 라이드(Sally Ride)가 최초로 우주에 간 미국 여성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메이 제미슨은 NASA의 우주비행사 모집 문이 열렸음을 깨닫고 1983년과 1987년 두 차례에 걸쳐 지원했습니다. 약 2,000명의 지원자 가운데 14명의 동료와 함께 선발되었으며,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Challenger)호 폭발 사고로 7명의 우주비행사가 목숨을 잃은 뒤 최초로 선발된 신입 중 한 명이었습니다.

NASA 내에서 메이는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와 협력하며 챌린저호 사고 이후 첫 우주왕복선 발사 준비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1992년 9월, 그녀는 임무 전문가(mission specialist) 자격으로 STS-47 임무에 탑승했습니다. 엔데버호 안에서 메이는 우주에 간 최초의 흑인 여성이 되었고, 세계 최초로 조종사 면허를 취득한 흑인 여성 베시 콜먼(Bessie Coleman)의 사진을 함께 가져가 그녀를 기렸습니다. 임무 기간 동안 그녀는 무중력 상태와 우주 멀미 등에 관한 여러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우주에서 처음 본 것은 내 고향 시카고였습니다. (…) 정말 의미 있는 순간이었어요. 어릴 적부터 나는 언젠가 반드시 우주에 갈 것이라고 믿어왔으니까요."

NASA 이후의 과학 프로젝트

메이 제미슨은 1993년 NASA를 떠나 자신의 회사 '더 제미슨 그룹(The Jemison Group)'을 설립하고, 연구를 진행하며 일상생활에 유용한 과학기술 개발에 매진했습니다. 또한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도러시 제미슨 재단(Dorothy Jemison Foundation)을 설립했습니다. 이 재단의 대표 프로젝트인 '우리가 공유하는 지구(The Earth We Share)'는 12세에서 16세 청소년들이 에너지, 환경 등 현재 인류가 직면한 세계적 문제 해결에 도전하는 국제 과학 캠프를 운영합니다.

동시에 메이는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환경과학 교수직을 맡아 후진 양성에 힘썼습니다. 다양한 과학 단체의 활동적인 회원으로서 소수민족 출신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에도 앞장섰습니다.

교육 활동 외에도 메이는 특히 신경계를 비롯한 인체 관련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꾸준히 참여하며 과학자로서의 발자취를 이어갔습니다.

메이 제미슨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여성 명예의 전당(National Women's Hall of Fame)에 헌액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