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세실리우스 칼버트는 누구였나? 메릴랜드 식민지를 연 제2대 볼티모어 경

세실리우스(세실) 칼버트, 제2대 볼티모어 경(Caecilius Calvert, 2nd Baron Baltimore, 1605~1675)은 영국의 귀족이자 정치가였으며, 북아메리카 초기 식민지 개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인물입니다. 그는 요크셔의 키플린 홀(Kiplin Hall)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아버지 조지 칼버트(George Calvert) 제1대 볼티모어 경과 어머니 앤 민(Anne Mynne)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으로, 훗날 메릴랜드 초대 총독이 되는 레너드 칼버트(Leonard Calvert)의 형이기도 했습니다.

가톨릭 귀족 가문의 후계자

칼버트 가문은 아버지 조지 칼버트가 고위 공직을 내놓고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잉글랜드 국교회 중심 사회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소수파가 되었습니다. 당시 잉글랜드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신앙 실천과 공직 활동에 여러 제약을 받았기 때문에, 칼버트 가문은 가톨릭 신자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피난처를 아메리카 대륙에 세우는 구상을 품게 되었습니다.

메릴랜드 특허장 확보

조지 칼버트는 샤를 1세(Charles I)로부터 체서피크 만 일대에 식민지를 설립할 수 있는 특허장을 받아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특허장이 최종 발급되기 직전인 1632년 4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세실리우스가 아버지의 작위와 계획을 물려받아 제2대 볼티모어 경이 되었고, 같은 해 6월 메릴랜드 속주(Province of Maryland)에 대한 왕실 특허장을 정식으로 수여받았습니다.

'메릴랜드'라는 이름은 샤를 1세의 왕비이자 프랑스 출신인 앙리에타 마리아(Henrietta Maria of France)를 기려 붙여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특허장은 칼버트와 그의 상속인들에게 메릴랜드를 영주(proprietor)로서 독자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했으며, 이곳이 잉글랜드 가톨릭 신자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식민지 건설과 종교의 자유

흥미롭게도 세실리우스 칼버트는 평생 한 번도 메릴랜드 땅을 밟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동생 레너드 칼버트를 총독으로 임명해 식민지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1633년 말 '아크 호(Ark)'와 '컨커드 호(Dove)' 두 척의 배에 약 140명의 이주민이 탑승해 잉글랜드를 출발했고, 1634년 체서피크 만에 도착해 메릴랜드 최초의 정착지인 세인트메리스 시티(St. Mary's City)를 건설했습니다.

칼버트 자신은 가톨릭 신자였지만, 식민지에서 성공회 신자 등 다른 교파를 배척하는 것이 공동체의 번영에 해가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덕분에 메릴랜드는 1649년 '관용법(Toleration Act)'으로 이어지는 종교적 관용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고, 북아메리카에서 종교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한 선구적인 지역이 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유산

세실리우스 칼버트는 메릴랜드 초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기억됩니다. 그는 종교의 자유와 관용이 실현되는 공동체라는 비전을 제시했으며, 오늘날 미국 메릴랜드 주의 기초를 놓은 설계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