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종교적 자유
캘버트(Calvert) 가문은 당시 잉글랜드에서 박해를 견뎌야 했던 독실한 가톨릭 신앙의 집안이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잉글랜드는 국교회(성공회)를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가톨릭 신자들은 벌금형과 각종 시민권 제한 등 차별과 억압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조지 캘버트(George Calvert), 즉 초대 볼티모어 남작 역시 가톨릭 신앙 때문에 여러 차례 투옥되는 고통을 겪었으며, 공직에서 물러나는 등 상당한 재산과 기회를 잃어야 했습니다.
그는 메릴랜드를 잉글랜드 가톨릭 신자들의 피난처로 구상했습니다. 단순히 가톨릭 예배를 드렸다는 이유만으로 벌금과 여러 시민상의 불이익을 받던 그들에게, 새로운 대륙은 자유롭게 신앙을 실천할 수 있는 희망의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캘버트는 왕으로부터 사유(proprietary) 헌장을 받아 아메리카에 가톨릭 식민지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가 남긴 표현처럼 "그곳의 토양뿐 아니라 사람들까지도 내 것"이 되는 땅, 즉 왕에게 직접 영토를 하사받아 자신의 통치 아래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식민지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1632년 조지 캘버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세실리우스 캘버트(제2대 볼티모어 남작)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메릴랜드 식민지 설립을 추진했고, 1634년 최초의 정착민들이 도착하면서 식민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1649년에는 '관용법(Toleration Act)'이 제정되어 기독교인 간의 종교적 관용이 법으로 명문화되었으며, 메릴랜드는 북미에서 종교의 자유를 가장 먼저 실험한 식민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