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 – 실화 난파를 그린 낭만주의 회화의 탄생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  – 실화 난파를 그린 낭만주의 회화의 탄생『메두사의 뗏목』은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가 1819년에 완성한 대작으로,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1816년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프리깃함 '메두즈호'가 침몰한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은 이 작품은 낭만주의 회화의 탄생을 알린 기념비적인 그림으로 평가받습니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인 제리코는 힘과 감정, 열정을 더한 주제 선택을 통해 이상화된 세계가 아닌 '원시적인' 현실감을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메두사의 뗏목, 실화를 바탕으로 한 비극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  – 실화 난파를 그린 낭만주의 회화의 탄생테오도르 제리코는 열다섯 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미켈란젤로·루벤스·카라바조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처음에는 군사 주제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이름을 일약 유명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제리코가 그린 것은 세네갈 해안으로 향하던 프리깃함 '라 메두즈(La Méduse)'를 포함한 해군 함정 4척의 이야기입니다.

라 메두즈호는 25년 동안 배에 발을 딛지 않았던 무경험한 선장의 지휘 아래 다른 함선보다 빠르게 홀로 모리타니아 해안을 향해 전진합니다. 부하들을 깊이 경멸하고 선원들의 조언을 무시한 끝, 배는 거대한 모래톱을 향해 직진하다가 결국 침몰하고 맙니다. 때는 1816년 7월 초였습니다.

바다에 내던져진 조난자들은 지휘관이 만든 임시 뗏목에 버려진 채 구조되기까지 27일간의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굶주림과 폭염, 폭동, 심지어 식인 풍습까지 벌어진 끝에 살아남은 이는 단 15명뿐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생존자 두 명이 1817년 자신들의 경험을 담은 책을 출간하면서 거대한 정치적·사회적 스캔들로 번졌습니다. 무능한 지휘관이 배를 몰아 침몰시켰다는 비난이 거세졌고, 유일한 위로라면 선장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는 점 정도였습니다.

현실주의가 이상을 대체하다

이탈리아 유학에서 돌아온 제리코는 이 무시무시한 사건에 매료되어 가로 7m, 세로 4m 크기의 대작에 착수합니다. 1년에 걸친 자료 조사, 49점의 스케치, 뗏목 모형 제작, 시체 연구, 그리고 생존자 두 명의 증언을 거쳐 1819년 마침내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이후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1821년 이 작품을 전시했고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제리코는 1824년,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그림은 그가 세상을 떠난 같은 해 국가가 매입했으며,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  – 실화 난파를 그린 낭만주의 회화의 탄생그림에서 바다는 화면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뗏목은 전경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거친 파도와 폭풍우 몰아치는 하늘 아래, 프리깃함 라 메두즈호의 승객 149명(일부는 이미 사망)이 길이 20m, 너비 7m의 뗏목 위에 올라 있습니다. 비틀거리며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존자들은 마지막 희망에 힘을 모읍니다. 피라미드 형태로 얽힌 신체들 사이, 먼 지평선을 지나가는 배의 주의를 끌기 위해 천을 휘두르는 건장한 청년이 눈에 띕니다. 그들을 구하러 온 아르고스호가 구해준 사람은 단 15명이었습니다.

구름 사이로 비껴드는 빛은 창백한 시체들 위로 광선을 드리워 드라마틱한 분위기와 공포, 고통, 죽음의 감각을 한층 강조합니다. 흥미로운 디테일도 눈에 띕니다. 제리코는 발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대개 커튼 아래로 숨겼는데, 이 그림에서도 발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가 이 그림의 모델 중 한 명이라는 점입니다. 전경에 뗏목에 엎드려 죽은 인물이 바로 그의 얼굴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리코 그림이 남긴 영향

이 작품의 정치적 성격 또한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구조 직후 열린 사령관에 대한 재판은 사실상 군주제에 대한 재판이 되었고, 자유주의 야당 세력을 규합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리코 역시 피라미드 꼭대기에 검은 피부의 인물을 배치하는 선택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대담한 주제, 불같이 격렬한 구성, 두터운 붓터치, 명암의 극적인 대비, 사실적인 신체 표현 덕분에 『메두사의 뗏목』은 1819년 살롱에서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습니다. 눈높이까지 걸어 올려 전시된 이 그림과 관객의 시선이 마주하는 순간의 충격은 실제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다비드가 이룩한 신고전주의를 전복시킨 이 그림은 제리코를 프랑스 낭만주의의 확실한 창시자로 자리매김하게 했고, 들라크루아가 이끄는 새로운 예술가 세대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자료

- Jean Sagne, 『제리코 전기(Géricault)』, 페이야드(Fayard), 1991.

- 『위대한 화가들 –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 연재 만화, 글레나(Glénat),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