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로이 전투는 1643년 5월 18일부터 19일까지 로크로이 요새 앞 벌어진 전투로, 훗날 '그랑 콩데(대콩데)'로 불리게 될 젊은 앙기앙 공작이 스페인군을 상대로 프랑스에 결정적인 승리를 안긴 사건입니다. 스페인 국왕 필립 4세는 오랜 정적 리슐리외 추기경의 죽음을 틈타 프랑스 침공을 계획했고, 플랑드르 주둔 스페인군 26,000명은 파리 진군에 앞서 요충지 확보를 위해 5월 10일 로크로이를 포위했습니다. 그러나 앙기앙 공작이 지휘하는 프랑스군은 포위된 도시를 성공적으로 구해냈습니다. 한 세기 동안 유럽 전장을 지배해 온 스페인 보병은 이 전투에서 '무적'이라는 명성을 잃었으며, 그 파장은 실로 컸습니다.
배경: 30년 전쟁
1618년부터 유럽을 황폐화시킨 30년 전쟁에 처음에는 간접적으로 얽혀 있던 프랑스 왕국은 1635년부터 스페인과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1635년 11월 코르비(Corbie) 함락 소식은 파리에 일시적인 공포를 불러일으켰고, 전쟁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1643년 봄, 프랑스는 결정적 승리를 바라보기는커녕 오히려 나라의 '두 기둥'이었던 리슐리외 추기경과 루이 13세 국왕을 연달아 잃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새 왕은 겨우 5세였습니다. 프란시스코 데 멜로가 이끄는 스페인군이 로크로이를 포위했을 때, 왕실군의 지휘봉을 쥔 것은 강력한 콩데 가문의 후계자, 루이 2세 드 부르봉 즉 앙기앙 공작이었습니다.
5월 14일에 사망한 루이 13세의 부고는 군대의 사기가 꺾이지 않도록 병사들에게 철저히 감춰졌습니다. 프랑수아 드 로스피탈(François de L'Hospital)과 같은 노련한 참모들에 둘러싸인 젊은 공작은 포위 해제를 결심하고 25,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로크로이로 진군했습니다. 멜로는 자신의 플랑드르 군대, 곧 한 세기 동안 전장을 제패해 온 정예 보병 스페인·이탈리아 테르시오의 우월함을 확신했고, 도시에서 멀지 않은 평원에 진형을 갖추며 결전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르덴느 지방 로크로이 앞 평야에서는 21세의 부르봉가 루이 2세(훗날 그랑 콩데)가 이끄는 프랑스 왕실군과 프란시스코 데 멜로가 지휘하는 플랑드르 스페인군이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양측 병력은 보병 17,000명과 기병 8,000명을 포함해 약 25,000명으로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프랑스군은 스위스 연대 2개를 포함해 총 15개 연대를 운용했고, 스페인군은 스페인 tercios viejos(구 테르시오) 5개와 이탈리아 테르시오 3개 등 약 20개 부대를 배치했습니다.
로크로이 전투의 전개
전투의 흐름은 전선마다 달랐습니다. 오른쪽 익에서는 젊은 앙기앙 공작이 직접 이끄는 기병대가 스페인군 좌익을 붕괴시켰습니다. 반면 중앙에서는 견고한 테르시오의 저항이 빛을 발해, 시로(Baron de Sirot) 남작이 이끄는 예비대의 지원 덕분에 버텨내긴 했지만 프랑스 전선이 오히려 무너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무너진 중앙을 구하러 갈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우세를 밀어붙일 것인가라는 선택 앞에서 장래의 그랑 콩데는 후방에서 적 우익을 무너뜨리기 위한 선회 기동을 감행하기로 결정합니다.
정면은 사실상 차단되었고 후방에서는 위협을 받게 된, 그러나 여전히 육중한 스페인 보병 — 노장 푸엔테스 백작이 지휘하는 5천 명의 정예 병력 — 은 사방에서 포위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진형을 유지했습니다. 앙기앙 공작은 극도로 훈련된 스페인 화승총병과 장창 방진을 상대로 세 차례나 기병 돌격을 감행하며 진형을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푸엔테스 백작이 전사하자 전투는 이미 끝난 것처럼 보였고, 지휘관을 잃은 테르시오들은 항복 준비를 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젊은 프랑스 장군이 항복을 받으려 전진하는 모습에 자신감이 부족했던 스페인군은 다시 일제 사격을 퍼부었고, '배신'을 외친 프랑스군은 사방에서 테르시오를 에워싼 뒤 총공격을 개시해 적의 방진을 완전히 와해시켰습니다. 멜로의 잔여 기병대는 탈출에 성했지만, 스페인 보병은 6,000명이 전사하고 비슷한 수가 포로로 잡히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한 세기 만에 거둔 프랑스의 대(對) 스페인 첫 승리
이 첫 승리는 이후의 수많은 승리를 보장해 주었습니다. '전장의 여왕'이라 불리던 보병을 상대로 눈부신 승리를 거둔 프랑스 기병대와 앙기앙 공작(훗날 '그랑 콩데')은 적의 침공 위험을 막아내며 일류 지휘관으로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5년 뒤인 1648년 8월 20일, 콩데는 랭스(Lens) 평야에서 플랑드르 군대의 강력한 테르시오들에 마지막 타격을 가하게 됩니다.
로크로이 이후 전쟁은 피레네 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15년간 이어졌습니다. 스페인은 루이 14세 시대 프랑스에 패권을 내주며 유럽 최강국으로서의 지위를 확실히 상실했습니다.
참고문헌
- 로크로이(Rocroi), 1643년, 로랑 헤닝거(Laurent Henninger). 역사의 위대한 전투, 1993.
- Rocroi 1643, Stéphane Thion 제작. 역사 및 컬렉션, 2013.
- Marc Blancpain의 Rocroi의 화요일. 손도끼,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