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마르세유 비누의 탄생 비화: 루이 14세와 콜베르가 이끈 프랑스 비누 산업의 역사

위생은 역사적 일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평생 단 한 번밖에 목욕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는 완전히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루이 14세는 재상 콜베르와 함께 프랑스 비누 산업 부흥의 선구자였습니다. 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비누의 긴 역사와 함께 지금부터 만나보시겠습니다.

가장 오래된 문명부터 비누를 사용했습니다

비누의 역사를 간략히 짚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누 산업은 인류 가장 오래된 산업 중 하나에 속합니다. 고대의 신성한 문헌은 물론 그리스어와 라틴어 문헌에도 비누가 언급되어 있으며, 고대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기원후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폐허가 된 폼페이 유적 발굴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비누 공장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세제를 만들던 6개의 돌 항아리와 가마, 각종 도구들이 그것이며, 완벽하게 보존된 비누도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우리의 조상인 갈리아족 사이에서는 비누가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다듬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비누는 염소 지방과 자작나무 재로 만들어졌습니다. 8세기에 이르러서야 동물성 지방이 올리브유로 대체되었고, 이는 이후 올리브유의 위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비누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했습니다. 따라서 루이 14세와 그의 궁정이 비누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해도, 그것이 비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루이 14세와 콜베르, 프랑스에 비누 제조 기술을 들여오다

농담처럼 들리시나요? 하지만 프랑스 비누 산업의 부흥이 실제로 루이 14세 덕분에 이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평생 단 한 번 목욕했다는 소문의 주인공이 말이죠. 그럼에도 그는 프랑스 비누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비누 산업은 17세기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바로 이 시기 콜베르는 프랑스에 비누 산업을 정착시키고자 했습니다. 비누 제조 기술은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사보나(Savona)'를 통해 널리 퍼졌고,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도 이를 따라 명성을 쌓아갔습니다.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던 콜베르는 이 산업을 프랑스로 들여오고자 했습니다. 다만 그 조건은 엄격했습니다. 고용되는 모든 노동자와 사용되는 모든 원료가 반드시 프랑스산이어야 했고, 산업의 거점은 툴롱으로 옮겨졌습니다(이미 100% 프랑스산 제품이 유행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루이 14세는 1666년 3월 11일, 피에르 리가(Sieur Pierre Rigat)의 제조소에 이 산업의 독점권을 부여하는 법령을 반포했으며, 이는 콜베르가 제시한 조건에 따라 시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특권은 거센 반발을 불러일었고, 리가트는 결국 1669년 10월 10일 법령으로 특권을 박탈당했습니다. 이후 비누 산업은 시장 여건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도시, 바로 마르세유에 자리 잡게 됩니다. ("아하, 그 유명한 마르세유 비누(Savon de Marseille)!"라고 외치는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르세유 비누는 바로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마르세유의 비누 산업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강력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눈부시게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호황에는 늘 문제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바로 사기였습니다. 호황을 누리는 시장을 본 여러 업체가 비누 제조에 뛰어들었지만, 상상할 수 있듯이 품질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에 루이 14세는 1688년 10월 5일 칙령을 통해 비누 제조를 세부 항목까지 철저히 규제하기로 결정합니다.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폐하는 프로방스에서 만든 비누의 품질이 좋지 않아 처음에는 크게 유행하던 비누가 상당히 쇠퇴했으며, 무게가 조작되고 각종 결함이 나타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원료 준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탓에 외국인들이 자국에 이 제조 시설을 유치해 설립할 수도 있는 형편이다. 폐하는 이를 예방하고, 만연한 폐단을 바로잡으며, 이 공업을 회복하기로 결심하였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명한다.

– 품질과 무관하게, 비누 제조는 매년 6월, 7월, 8월 동안 제품 압수 처벌을 조건으로 완전히 중단한다.

– 매년 첫 달 이전에는 이 공업에서 새 기름을 사용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기면 제품 압수 처벌에 처한다.

– 소다통이나 재통, 지방, 버터 또는 기타 재료를 비누 공장에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며, 지방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올리브 오일만을 사용해야 한다. 위반 시 압수된다.

제13조: 비누 공장이 있는 프로방스의 마을 공동체는 매년 두 명의 주요 상인을 임명하여 이 사안을 심의하고, 상기 전체 규정의 이행을 위해 해당 마을과 관할 지역을 감시하게 한다. 위반한 제조업자나 상인을 발견하면 일반 판사에게 고발하여 사안의 경중에 따라 처벌하도록 한다."

루이 14세 시대, 비누는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이제 루이 14세와 그의 조력자 장바티스트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가 수행한 중요한 역할을 알았으니, 여러분도 저와 같은 의문을 품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는 왜 씻지 않았다는 것일까요?

태양왕 시대의 위생 개념은 오늘날과도, 중세와도 전혀 달랐습니다. 중세에는 '기독교인'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몸을 깨끗이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17세기에는 습관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한 것은 비누가 아니라 물이었습니다. 흑사병과 같은 무서운 질병이 맑은 물을 통해 전염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세척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깨끗하고 단정하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몸을 관리했을까요? 건식 세정이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다만 여성의 경우 얼굴, 손, 발, 데콜테 등 눈에 보이는 부위에만 적용되었죠. 또한 옷을 매우 자주 갈아입었고, 땀이 나는 대로 향수를 듬뿍 뿌렸습니다.

그렇다면 프로방스에서 대량 생산된 비누는 어떤 용도로 쓰였을까요? 안타깝게도 목욕용으로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주로 리넨(아마포) 세탁에 사용되었습니다.

마르세유 비누의 탄생 비화: 루이 14세와 콜베르가 이끈 프랑스 비누 산업의 역사

그 시대에는 우리가 버린 것이 다행인 습관이 많습니다. 위생 관념의 부재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오늘날 우리는 프랑스에서 만든 훌륭한 비누를 고품질 제품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Senteurs de France가 대표적입니다. 저는 이 브랜드를 알게 된 후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그라스 향과 유기농 시어버터가 풍부하게 함유된 100% 프랑스산 비누를 직접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Senteurs de France는 과자와 양초 제품도 선보이고 있으니, 다양한 고품질 제품을 놓치지 마세요.

출처:
– 갈리카(Gallica)
– Lieutier, Léon Louis Paul Marie: 『마르세유 비누와 비누 제조에 사용되는 물질』
– 파리 약학 논문, 1869년
– 『경찰·재정 보편 사전』 제2권 – https://books.google.fr/